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섹스했을까?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섹스했을까?

M 망가조아 0 2617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섹스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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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성교육 시간에도 이런 건 배운 적 없을 거다! 


인간이 섹스를 하는 한, 그리고 페티쉬를 가지고, 에로틱한 행위들을 즐기는 한 흥미진진한 가십거리는 계속해서 생겨날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섹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수년간 크게 변화해왔고, 이는 문화나 관점에 따라서도 다양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은 섹스를 즐겨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았을 섹스에 대한 재미난 일반상식을 공유할 테니 간만에 지식을 쌓아보자.



기원전 1600년경




이집트 여자들은 과일, 꿀, 대추를 섞은 다음 솜에 적셔 피임용 살정제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질에 삽입했다.






기원전 700년경




전쟁에 나가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아내에게 빵으로 된 딜도를 주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했다.  






기원전 54년경




클레오파트라는 파피루스 상자에 벌들을 넣어 바이브레이터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1200년대




금나라 시기의 중국 남자들은 페니스 링과 같은 다양한 성인용품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성 파트너의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기 위해 눈썹이 그대로 붙어 있는) 염소의 눈꺼풀 등을 사용한 기록도 남아있다고 한다. 결국 1600년대 상아와 옥으로 만들어진 페니스 링이 등장했고, 그중 일부에는 두 갈래의 혀를 가진 용이 조각되어 있기도 했다. 이것이 토끼 바이브레이터의 원조 격일지도! 






1300년대




프랑스에서 남자들은 발기 가능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가끔 법정에서 자위하여 사정을 해야 했다. 그것참, 긴장돼서 제대로 흥분이나 됐을까?






1450년




도서 <옥스퍼드 컴패니언 투 더 보디>에서 처음으로 인모(가짜 음모)가 언급됐다. 당시에 왜 인모가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일반적인 가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매춘부들이 이가 생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음모를 제거해야 했는데, 이를 대놓고 보여주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인모가 필요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의 가설은 매춘부들이 매독 증상을 감추기 위해 인모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1790년대~1809년




‘굿바이브레이션’ 소속 상 과학자캐롤 퀸 박사는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8일 후에 집으로 돌아가니 씻지 마시오!”라는 편지를 썼다고 알려진다고 말한다.  






1848년~1880년




히피 문화 이전에 존재했던 섹스 공동체인 ‘오네이다 커뮤니티’가 뉴욕 북부에서 형성됐다. “섹스와 공동체를 떠올릴 때 우리는 주로 1960년대를 연상하는데, 19세기에도 공동체는 존재했습니다”라고 퀸 박사는 말한다. 


오네이다 멤버들은 “자유 사랑” 체계를 믿었다(이는 창립자인 존 노이스가 만든 단어다). 이러한 체계 아래에서는 상대방과의 동의 하에 누구나 다른 멤버와 섹스를 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와해된 후 그들의 창립자는 은 식기류로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오네이다 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마 당신도 이미 사용해보거나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1894년




미시건 주의 의사 존 하비 켈로그는 자위를 억제하기 위해 켈로그의 콘플레이크를 발명했다. 그는 음식의 맛이 더 다양할수록 성적으로 흥분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아주 밋밋한 맛의 시리얼을 만들어낸 것이다. 






1900년대




“히스테리증”이라는 병에 걸린 여성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이브레이터가 발명됐다고 퀸 박사는 말한다. 그러한 바이브레이터의 치료 효과는 “흥분 발작 경감”이라고 불렸다. “오르가슴”이란 단어가 훨씬 짧고 간편해서 다행이다.






1917년




북아메리카 최초의 LGBT 출판물인 ‘르 므슈판타스티크’가 발간됐다. “이는 몬트리올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레즈비언이자 시인이었던 엘사기드로,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로즈웰 조지 밀스가 편집을 담당했습니다”라고 퀸 박사는 덧붙인다.






1918년




이후 ‘아메리칸 플랜’이라고 알려진 ‘챔벌린-칸’법으로 인해 3만 명의 여성들이 투옥됐다. ‘STI 프로젝트’의 총 관리자인 제넬 마리 피어스는 “’아메리칸 플랜’의 목표는 미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미국 군인들 사이에 만연하던 성병에 맞서 싸우고자 함이었습니다. 현재 이는 대부분 잊혔죠”라고 말한다. 




이 여성들은 강제적으로 부인과 검사를 받고 감금되었으며 성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소독, 수은 및 비소 치료와 같은 끔찍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성 노동자들과 유색인종 여성들, 그리고 이민자들은 더 잔인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는 절대 군인들 사이의 성병을 멈추지 못했다. 이래저래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두 명의 스윙어(여러 사람과 섹스하는 사람)가 CIA 내부로 침입했다. 국제 간첩 박물관의 알리자 브랜은 칼 E 코이셔(체코의 정보 장교이자,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의 간첩)와 그의 아내인 한나코이셔가 연줄이 될 만한 사람들 및 기타 중요 정보에 사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스윙 섹스와 스와핑 섹스 파티를 벌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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