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노하우) 당신들 속의 변태들 - 변태가 되는 길

(섹스노하우) 당신들 속의 변태들 - 변태가 되는 길

M 망가조아 0 1201

(섹스노하우) 당신들 속의 변태들 - 변태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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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가 되기 위해서 특별한 수련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다. 변태는 그저 어느 순간 자신이 변태임을 알게 된다. 


나의 경우는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어렸을 때였고, 초등학생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나는 학대 받는 여성의 상상을 하면서 뭐라 형언키 어려운 달뜬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SM의 ‘S'이고 동시에 이성애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신기한 것이, 나는 착해도 보통 착한 녀석이 아니었다. 벙어리 삼룡이 쯤의 바보 단계에 이를 정도로 착했다. 


예를 들어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욕을 열 번도 하지 않았다. (참고로 ‘미친놈’도 당시의 내겐 욕이었다.) “필독이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나쁜 말을 한다.”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학대 받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혼자 헐떡거린 것은 나 자신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만한 일이었다. 


그나마 음침한 면이 있다면 검은색을 열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정도? (정말이지 더 이상 짙을 수 없는 검은색을 너무나 좋아한다.)




“내가 왜 이러지?”


 


누구냐, 너...


 


특별히 어떤 고민이라기보다는 그저 낙천적인 호기심에 가까운 의문이었다. 


나는 어린아이답게 그저 단순하고 가벼웠다. 어쨌든 나는 그런 이미지들을 찾아 헤맸다. 


사극에서 중전마마가 임금님과 깨가 한창 쏟아지는 후궁의 종아리를 때린다고 치자. 식구들은 이걸 그냥 그런가 하고 보지만 내 가슴은 쾌감에 방망이질 쳤다. 그런 내게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해적판으로 떠돌던 만화 [북두신권]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성수이자 바이블이었다.




[북두신권]에서 그려지는 정글 같은 미래세계에서는 납치와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악당들이 힘없는 여자들을 우리 속에 가두고 채찍질한다. 


물론 강간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의 목에 걸려 있는 쇠사슬. 이게 나를 미치게 했다. 


나에겐 이 장면이 중요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주인공이 그 악당들에게 “넌 이미 죽어있다.”는 카리스마 과잉의 언변을 날리는 게 중요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강한 마초에 대한 동경 따위는 티끌만치도 없었다. 


사내아이들과 뛰노는 데 끼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은 여자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했다.




악당들이나 죽이지 마라...


 


[북두신권] 외에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헐리웃 영화도 좋았다. 


왜냐면 거기엔 아리따운 여자노예들이 나오니까. 특별히 학대받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노예라고 하는 설정 자체가 날 흥분시켰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쯤에 첫 사정, 그러니까 몽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의 발기와 사정에 SM적인 상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가학 기질이 성적(性的)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종류의 페티시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나는 미술을 지망했고 SM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데 어설프게 배운 뎃셍실력을 동원했다. 


사실 당시엔 인터넷이란 것도 없었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SM 이미지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으니 내가 직접 만들어서 감상하는 편이 더 용이했다. 


먼저 종이 질이 좋고 두꺼운 연습장 하나를 샀다. 그리고는 4B 연필로 하나하나의 이미지들을 정성들여 그리기 시작했다. 


이 때 그 유명한 미술교본인 잭 햄(Jack Ham)의 [인체 드로잉]이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처음엔 어디까지나 완성작을 즐기려는 생각이었고 그리는 것은 결과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역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하나하나의 선을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과정이 더 자극적이고 즐거웠다. 


오히려 완성작은 의미가 없었다. 그리는 와중에 내 대뇌 속의 SM피질이 상상력을 모두 발휘하고 사용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릴 때마다 남근이 터질 것처럼 팽창되곤 했다. 


한 컷의 이미지를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으므로 폭발 직전의 남근을 위해 팬티를 내리고 지퍼를 열고 있어도 너무 오랫동안 풀 에너지로 발기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고환과 아랫배에 뻑적지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발기가 멈추고 나서도 통증은 장시간 계속됐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러면서 자위를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잭 햄은 나의 자위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이 미술가를 통해 이토록 성적 즐거움을 만끽해본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이 때 나의 드로잉 실력은 획기적으로 늘었다. 뭐든지 즐기면서 익힐 때 는다는 말은 내게 있어서는 진리로 증명됐다. 


미술학원에서 하던 재미없는 석고상 뎃셍과는, 그 집중력이 질적으로 틀렸다. 


생각해보라. 근엄한 아그리파와 가엾은 나체의 여성. 어느 쪽을 더 그리고 싶었겠는가. 


내 그림실력이야 정말 형편없지만, 그나마도 그때 향상된 것이 거의 전부다. 


매일 밤, 공부하는 척 부모님을 안심시키며 실제로는 마약과도 같은 몽환상태에 빠져 교과서와 참고서 밑에 깔아둔 연습장의 순결한 백지를 유린했다. 


나의 스승 잭 햄과 함께.


 




어느 게 더 땡겼겠어?


 


가장 많이 시도했던 이미지는 쇠사슬이었다. 


여자의 누드는 오브제라기보다는 차라리 배경이었다. 변변한 구체관절인형 하나 없던 내게 사촌누나에게서 얻어온 바비인형은 무척 유용했다. 


구체관절이 없는 바비인형의 몸은 뻣뻣했지만 나는 일종의 집념을 가지고 불쌍한 바비의 옷을 벗겨놓고 기괴한 자세로 만들어놓고는-혹은 얼추 비슷한 자세에서 대충 상상하고는- 그것을 누드화의 모델 삼아 카피해 그렸다.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쇠사슬, 수/족갑, 개목걸이(그리고 거기에 달린 방울), 철창, 채찍 따위는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자극적인 대목이었다. 


채찍을 맞으며 남자가 타고 있는 마차(사실은 人車?)를 엎드려 끌고 있는 여자라든지, 밧줄에 묶여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자라든지 여하튼 이미지들은 거의 무한대로 창조될 수 있었으며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인간의 상상력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미안하다 바비...


어머니는 알고 계신다, 하필이면…


 


수많은 밤을 예술혼(?)으로 불태웠지만 한 번도 부모님께 현장이 적발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초긴장 상태에서 안전에 안전을 기해 계속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간수의 눈을 피해 탈옥계획을 짜는 죄수들의 스토리가 현실적으로 느껴졌을 정도였다.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정돈돼 있었고 아마도 모든 바비인형들 중 거의 가장 많이 학대받았을 나의 바비도 (굉장히 변태스러운 표현이다만) 제대로 옷을 챙겨 입은 상태였다. 


그날 아침도 어머니의 눈에 결코 띄지 않을 책상 속 깊은 곳에 어느새 거의 한 권을 꽉 채운 소중한 SM 그림책을 넣어두고 등굣길에 올랐다.




집에 돌아오자 집안과 방이 너무나 깨끗하게 정리정돈 돼 있었고 나는 즉시 긴장했다. 어머니가 대청소를 하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 책상도 어머니의 결벽증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왔니? 씻고 밥 먹어라.”며 인사를 건넸고 나는 나름대로 태연하게 방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책상 한가운데에 문제의 SM 아트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렇다. 그건 어머니의 소리 없는 멘트였던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라고 하는. 


그 순간 내 심정은 지옥의 바닥을 쳤다. 


어머니는 친절하게도 가장 적나라한 그림이 적혀 있는 부분을 당신이 쓰시던 책갈피로 표시해두기까지 했다. 


그 페이지엔 양 손이 뒤로 결박된 여성이 쪼그려 앉아, 닭이 계란을 낳듯이 음부에서 무언가-액체 같은-가 흘러내리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나는 친구에게서 빌린 [플레이보이]를 통해 그 음부를 아주 디테일하게 정성껏 그렸었다. 이건 확인사살이었다.




과장을 전혀 보태지 않고, 진지하게 자살하고 싶었다. 이건 기껏해야 여자의 꽃이 만개(?)하고 있는 ‘평범한’ 도색잡지를 들킨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나는 변태였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SM을 추잡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철학이나 논리 따위를 집어치우고 당시 적어도 나를 몸으로 낳으신 어머니 앞에서는 너무나 추잡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멋을 좀 부린다고 표지에 ‘IMAGINATION'이라고 큼직하게 써 놓은 내 아트북은 그 이전까진 몽환의 세헤라자데였지만 그 깨끗한 책상 위에선 추하게 널브러진 시체였다. 


거기다 나의 조잡한 그림실력까지 날 더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이 죄악의 역사를 훑어보고 어머니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당시엔 한국에 SM의 개념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생전 처음, 그것도 아들의 손을 통해 펼쳐진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어찌 마음이 편했을까.


 


헌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 후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사건이 전혀 없었던 마냥 자연스럽게 나를 대했고 나도 특별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 책은 당장 불태워버렸지만 그 후에 비슷한 그림이 발견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어머니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당신이 나의 이런 성향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내비쳤다. 




사실 어머니는 나의 성 문제에 대해 무척 관대하거나 혹은 덤덤했다. 


어머니는 나의 몽정을 당연시했고 나는 몽정을 한 아침마다 젖은 팬티를 당당히 빨래바구니에 넣었다. 


중학시절 ‘몽정이 주는 질척거리는 느낌의 짜증스러움’에 대해 토론한 적도 있으며 초등학생 때는 아기가 어떻게 나오는 지에 대한 나의 질문에 임신과 출산의 대장정을 아주 디테일하고 사실적으로 교육받은 적도 있었다. 


20대가 된 이후로 종종 내 책상 언저리엔 마치 스킨&로션처럼 콘돔이 놓여있었지만 당신이나 나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20대 초반이던 몇 년 전 철없던 시절, 나는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사방에서 어머니의 카드를 긁고 다녔는데 다달이 확인되는 명세서에 ‘00모텔’이 찍히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이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性과 SM은 다르다. 


어머니는 나의 변태성 또한 덤덤하게 받아들인 걸까? 아니면 당신이 다루기엔 너무 충격적이고 큰 문제였기 때문에 도마 위에 올리기를 포기했던 걸까? 


어쨌든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신과 함께 보는 TV 화면에서 SM적인 장면이 등장할 때 나는 당신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여유롭게 화면을 응시하며 침을 삼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주 무난하게 변태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쯤에서는 일본 SM 문학의 거장이자 이상한 나라 일본에서는 대단한 문호 취급을 받는 단 오니로쿠(團鬼六)의 [사육인간飼育人間]시리즈를 대형서점에서 우연히 발견, 몇 주간의 밤을 발기탱천한 채 보낸 적도 있었고. (이 작가가 일본 SM의 여왕으로 불리는 스키모토 아야杉本 彩 주연의 영화 [꽃과 뱀]의 원작자다. 스키모토 아야는 이 영화에서 여왕이긴커녕 노예로 열연했다.)


 


나는 군 입대를 일찍 결정한 편이다. 2000년 7월, 대망의 전역을 하고 나자 전 국민이 핸드폰을 하나씩 들고 인터넷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2년 간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 때 천리안과 하이텔의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다고 생각한 나를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어쨌든 뼛속까지 컴맹이었던 나는 어느새 남들은 모두 갖고 있는 메일계정을 만들고 인터넷 서핑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버젓이 드러나 있는 SM 이미지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주 깔끔하고 적나라하던 실사였다! 




내 머릿속에서 꿈꾸던 것이 수많은 미녀들이 동원되어 구현되어 있는 것을 보니 너무나 반갑고 사기충천 된 것은 당연한 일.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동공확대와 발기를 경험했지만 그건 놀라움이나 충격은 아니었다. 


이미 다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다만 그것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었을 뿐. 


어쨌든 이 시기 언제나 애처로운 표정으로 묶여 있는 소녀(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아이카 미우라가 나의 헤로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나 많고 인터넷 공간에 커뮤티니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반가움과 함께 배신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그때까지 나는 SM이 나만의, 정말 극소수의 소수정예만 깨닫고 상상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비밀스러운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두고 이렇게들 모여서 소근대고 있었다니, 반칙이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곳저곳에 발을 내밀었지만. 




어쨌든 내게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바로 여기저기서 어렵사리 이뤄지고 있다는 실제의 SM 경험을 해 보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자아도취였지만, 그 때의 목표는 건방지게 나보다 한 발 앞서 나간 오프라인 경험자들을 어서 빨리 따라잡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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