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를 길들이다 5
광기를 길들이다 5
정수혁의 행동은 재빨랐다. 일을 잘하는 남자는 개인적인 일도 빠르게 처리했다.
윤재의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에도 재빠르게 개입해서 한두 달은 더 걸려야 팔릴 거라 생각되던 아파트가 팔려 한기정에게 절반의 돈을 돌려줄 수 있었다.
윤재가 마음을 정하자 모든 것은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모부의 회사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더는 고모가 전화로 하소연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물론 그 후로 고모가 다른 이유로 몇 번 전화를 하긴 했지만 윤재는 일부러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는 한기정에게서도 걸려왔다.
무슨 미련이 남은 것인지 기정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부재중 전화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짜증의 빈도도 높아져 결국은 폰 번호를 바꿨다.
그리고 바뀐 번호는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강제로 번호를 알아낸 정수혁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녀의 폰 번호가 그렇게 새롭게 생겨났다.
집은 수혁의 아파트로 옮겨 갔다.
원룸을 구하는 편이 좋았지만 어차피 원룸을 구해도 그 원룸으로 정수혁이 매일같이 들락거릴 것이 뻔해서 그냥 정수혁의 집으로 들어갔다.
일종의 동거의 시작이었다.
동거의 이유나 목적은 따로 없었다.
대신 한 가지 변화는 있었다.
윤재의 새 직장이었다.
수혁은 아직까지는 한경 전자의 젊은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정 회장이 죽기 전에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주식 양도 작업이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 회장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지분이 이런저런 모양새로 정수혁에게로 옮겨지는 과정에만 몇 달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작업이 끝날 때까지 정 회장이 살아 있어야만 한다.
윤재의 새 직장은 그 주식 양도 업무였다.
정수혁 직속의 기획팀에 스카우트된 윤재가 하는 일은 전공을 살려 주식 양도 과정에서 그것이 부정 승계로 보이지 않게 잘 꾸미는 일이었다.
물론 합법적이진 않았다.
합법적이지 않은 일을 합법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회계사의 능력이다.
윤재는 실력 있는 회계사였고 일에는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서윤재의 새 직함은 전략기획실 팀장이었다.
물론 ‘전략적으로 정수혁의 회장 취임을 기획한다.’의 준말이기도 했다.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 마.”
저녁 9시.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전략기획실은 이런 시간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전략기획실이 있는 35층의 불은 보통 자정까지 환하게 켜져 있었다.
정수혁의 회장 취임이 가까워질수록 가장 바빠지는 곳이 전략기획실이었다.
대외적으로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 역작용으로 쏟아지는 악의적 공격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홍보팀과 머리를 맞대며 의논하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런 까닭에 윤재는 수혁과 동거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들어가 잠을 잔 것이 손에 꼽히게 적었다.
거의 회사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가끔 발정 난 상태의 고용주가 그녀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찾아오거나 회장실로 부르거나.
전략기획실은 35층, 회장실은 44층.
어느 쪽이든 윤재는 달갑지 않았다. 보는 눈은 어디에든 있기 때문이다.
‘안에다 싸지 않는다.’는 첫 번째 조건은 수혁이 가볍게 어겨 버렸다. 그래서 새로 만든 조건은 ‘회사에 관계를 알리지 않는다.’였다.
윤재는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적 있다.
공개 열애를 하다가 파혼하는 순간 그 회사에 설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미 경험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전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파혼한 상태에서 퇴사를 강요받지 않았어도 아마 윤재 스스로 그만뒀을 것이다.
주위의 시선들이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는 건 윤재도 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명함을 얻고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이 사람들은 자신과 정수혁의 관계를 알면 어떤 식으로든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어 있다.
그러다가 정수혁과 관계가 끝나면 그때는 이 회사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거북해지는 정도의 수준이 아닐 것이다.
아마 어느 회사를 가도 정수혁과의 소문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 분명하다.
그 리스크를 평생 짊어지고 가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러니까 이 관계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윤재의 입장이지만 정수혁은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잃을 것이 없는 미친 인간은 정수혁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잃을 것이 없어서 정수혁은 그렇게 느긋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요즘 윤재의 생각이었다.
윤재는 자신이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생각보다 잃을 것이 많았다.
정 회장의 말이 옳았다.
사람은 잃기 전에는 자신에게 얼마나 잃을 것이 많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정 회장의 말은 옳았다.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잃을 것도 충분히 많았다.
자존심, 사회적 체면, 인간관계, 그런 것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은 성공에 대한 열망이나 더 인정받고 싶은 욕심들.
그런 것들이 자신에게 남은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인 반면에 정수혁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는 자존심이나 사회적 체면이 무너지는 것,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받는 것,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어떤 의미로는 미쳤다.
웃으면서 제 손에 든 스위치를 누르며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인간이다.
정 회장이 왜 정수혁에게 목줄을 채우지 못했는지 이해가 갔다.
애당초 정수혁은 목줄에 채워질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니 정 회장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목줄을 목에 거는 정수혁을, 그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 말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제 목덜미를 기어이 빨아 붉은 흔적을 남기는 수혁을 밀어내며 윤재는 생각했다.
대체 정수혁은 왜 자신에게 집착하는 걸까.
아직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이유를 기어이 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지만 가끔은 궁금해진다.
대체 무엇이 정수혁을 이렇게 미치게 했을까 하는 그런 궁금증이 가끔은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이 광기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하는 그런 생각.
“회사 안에서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냄새를 피우고 있으면서 나한테 참으라고 하는 게 더 우습지 않아?”
“누가 냄새를 피웠다고 그래?”
회장실에 보고서를 가지고 왔을 뿐이다. 그런데 무슨 냄새?
저녁 9시까지 퇴근도 하지 않고 저를 흠 없는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야근하는 자신이 무슨 냄새를 풍겼다고 또 이 지랄을 하는 걸까.
“너한테서는 항상 냄새가 나.”
“닥쳐 줄래?”
“음란한 냄새.”
“조건을 더 붙일까? 그 입 좀 닥치고 있는 조건.”
“서윤재. 윤재야. 너는 섹스할 때면 박아 달라고 졸라 대면서 이럴 때는 아닌 것처럼 굴더라.”
윤재가 내민 보고서에는 관심도 없는 수혁이었다.
수혁은 늘 그렇게 말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했으려고.’
믿어도 너무 믿는다.
능력 있다는 건 알지만 가끔은 그 능력이 의심쩍어지는 이유다.
“서윤재. 너는 네가 먼저 꼬리 치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지? 박아 달라고 온몸으로 냄새를 풍기면서 정작 박으려고 하면 순진한 척하며 그런 적 없는 것처럼 굴면 뭐가 달라져?”
“꼬리 치는 건 너 아니었어? 발정 난 개처럼 매일 플러팅을 해대면서 아랫도리만 세우고 다니는 건 너잖아. 그리고 내가 함부로 좆 대가리 세우지 말라고 말했었지? 때와 장소 구분하라고.”
“때와 장소, 구분하고 있잖아. 여기 장소로 좋지 않아? 지금은 때로 좋고 말이야.”
“넌 대체 일은 언제 하니? 네 머릿속에 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기는 하니?”
“기억 안 나? 내가 공부를 안 했다고 해서 만점을 한 번이라도 놓친 적이 있었어? 내 머리는 역할 구분이 확실해서 이런 순간에도 확실하게 자기 영역에서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그런 염려는 하지 말고. 벗을 거야, 말 거야?”
수혁의 손이 윤재의 허리를 감아 왔다.
의도는 이미 분명했다.
기어이 여기서 하겠다는 의도였다.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셔츠 안으로 들어와 맨살을 만지는 손길에 윤재는 결국 미간을 찡그리며 허락하고 말았다.
“빨리 끝내.”
“네가 협조하면.”
셔츠 안으로 파고든 손이 등을 타고 올라와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었다.
바짝 다가선 수혁의 가슴이 윤재의 가슴에 닿았다.
상을 등지고 선 윤재가 두 손으로 책상을 꽉 쥐었다.
그러지 않으면 남자에게 떠밀려 책상 위로 눕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 뻔했다.
“서윤재. 윤재야.”
윤재의 이름을 부드럽게 부르며 수혁이 그녀의 브래지어를 책상 위로 휙 던졌다.
단추가 풀어진 스트라이프 무늬 셔츠가 벌어지며 흰 젖가슴이 드러났다.
“다리 좀 벌려 봐.”
일부러 이런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뻔하다.
“책상 위에 올라가서.”
수혁을 쳐다보던 윤재가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다리를 벌렸다.
그러자 그 벌어진 다리 사이로 들어온 수혁의 손이 그녀의 팬티를 꾹 눌렀다.
“윤재야, 너는 항상 팬티가 젖어 있는 이유가 뭘까?”
수혁의 눈이 짓궂게 웃었다.
“아니면 내 앞에 서면 알아서 팬티가 젖는 거야?”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수혁의 앞에 서면 알아서 팬티가 젖는 것이 아니라 정수혁이 이런 식으로 플러팅을 하기 시작하면 팬티가 축축하게 젖을 뿐이다.
정수혁의 이런 눈빛이 가랑이 사이를 젖게 한다.
“넌 안 젖었어?”
하지만 자신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건 윤재도 잘 안다.
“안 젖었을 것 같아?”
윤재의 손을 잡은 수혁이 그 손을 제 바지로 이끌었다.
“만져 봐. 젖었는지 안 젖었는지.”
수혁의 바지 안으로 들어간 윤재의 손이 불룩한 브리프에 닿았다.
자신의 팬티와 사정이 다를 바 없이 수혁의 브리프도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난 너만 보면 젖어. 어디서든 말이야. 네가 눈에 보이면, 네 냄새가 나면 절제라는 것을 못 해. 팬티가 흠뻑 젖을 정도로 질질 싸는 나를 발견해.
웃기지 않아? 근사한 양복을 입고 으스대면서 서 있지만, 실제로 안을 들여다보면 음란한 생각을 하면서 팬티를 질질 적시고 있는 정수혁이라니. 웃기지?”
“하나도 안 웃겨.”
“서윤재는 나를 미친 개새끼로 만드는데, 서윤재는 왜 나 때문에 안 미치는 거지?”
“널 안 좋아하니까.”
“어떻게 하면 좋아할 거야?”
“그럴 일 없어.”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해 줄 수 있는데도?”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지키는 건 없잖아? 지금처럼 말이야. 조건 따위 지킬 마음도 없으면서 말로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거, 이제 안 속아.”
“안 속는다고 하면서 다리 벌려 주는 이유는 뭔데?”
“안 벌려 주면 강제로 벌릴 테니까.”
“내가 그런 놈은 아닌데.”
“아무래도 너보다 내가 너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정수혁. 너 그런 놈 맞아.”
“그런가?”
수혁이 그녀의 앞으로 더 다가섰다.
“바지 내려 봐.”
수혁의 요구에 윤재가 그의 브리프를 만지고 있던 손으로 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찌익-.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밤의 고요 때문일까.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끌어 내리며 젖은 브리프도 같이 끌어 내렸다.
그러자 브리프 안에서 발기한 것이 툭 튀어나왔다.
검붉은 빛으로 반들거리는 그것은 어젯밤에도 윤재가 입으로 빨았던 것이다.
저것을 입에 넣으면 입이 찢어질 것처럼 버겁다.
그러나 저것을 입에 넣고 빨아 주는 것을 좋아하는 이 미친 인간 때문에 윤재는 사탕을 빨듯이 저것을 빨아 댔다.
가죽 사탕. 꼭 그런 것이다.
위로 머리를 치켜든 채로 꿈틀거리는 것을 쳐다보며 윤재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건 학습에 의한 효과일까.
하도 빨아 대서 저것을 보면 침이 고이는 걸까.
“왜? 빨고 싶어?”
윤재의 시야를 수혁의 얼굴이 가렸다.
침이 고인 입 안으로 파고드는 혀에 윤재가 눈을 감았다.
거칠게 삼킨 입술을 물며 남자의 혀가 그녀의 입 안을 쓸었다.
저를 눌러 오는 무게에 짓눌려 윤재의 몸이 조금씩 뒤로 기울었다.
그녀를 밀어붙이며 수혁이 그녀의 혀뿌리를 빨아 당겼다.
저에게 몸의 무게를 실어 오는 남자의 흰 셔츠를 윤재가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셔츠를 끌어 내렸다.
투두둑.
뜯어진 단추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 손으로 흰 셔츠를 찢어 내듯 벗기자 남자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윤재는 그 모습을 흡족한 눈으로 쳐다봤다.
저를 벗겼으니 자신도 이 남자를 벗기는 것뿐이다.
셔츠 한 장만 걸친 채로 책상에 앉은 윤재가 제 앞에서 벌거벗은 남자를 향해 다리를 벌렸다.
허리 위까지 당겨 올라간 스커트 아래로 잔뜩 젖어 얼룩진 팬티가 드러났다.
“어느 쪽을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되잖아.”
손으로 그녀의 얼룩진 팬티를 누르며 수혁이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꼭지를 혀끝으로 핥다가 뭉클한 젖가슴 전체를 삼키며 수혁이 혀를 굴렸다.
그의 입 안에서 단단해진 꼭지가 굴려졌다.
꼭지를 이로 잘근거릴 때마다 그의 아래에 짓눌린 윤재의 몸이 들썩였다.
책상 아래로 내려온 다리의 끝에서 구두가 벗겨져 바닥에 굴렀다.
찌익-.
스타킹에 구멍이 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살구색 스타킹에 구멍을 낸 수혁이 그 안으로 손가락을 들이밀어 젖은 팬티의 한쪽을 들췄다.
그러고는 안쪽의 젖은 살을 쑤셔 댔다.
꼭지가 깨물리며 얼얼한 쾌감과 함께 아래쪽에서 찔러 오는 손가락이 주는 쾌감에 윤재가 고개를 젖혔다.
어둠이 내린 유리창 너머 새카만 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본사 건물은 세 개의 빌딩이 삼각형으로 마주 서 있다.
이 빌딩의 맞은편에는 같은 층의 사무실이 보인다.
44층의 회장실과 건너편 44층의 중역회의실이 마주 보고 있다.
고개를 젖힌 윤재의 눈에 건너편 44층의 불 켜진 창문이 들어왔다.
아직 그곳에도 중역들 혹은 그들의 비서진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쪽에서도 이쪽이 보일까.
블라인드는 내리지도 않았다.
만약 저쪽 건물에서 이쪽 건물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 책상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낱낱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읏.”
뜨거운 입술이 가슴에서 떨어져 나가자 윤재가 숨을 헐떡였다.
수혁이 그녀의 하체에서 스타킹과 함께 팬티를 끌어 내렸다.
엉망으로 뭉친 팬티와 스타킹을 바닥에 내던진 수혁이 그녀의 다리를 잡아 올렸다.
양손으로 다리를 잡아 벌리고 올린 다음 그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몸을 숙였다.
“보기 좋아, 서윤재.”
“보기 좋으면 빨리 박기나 해.”
“안달이 나? 빨리 박혔으면 좋겠어? 혀를 박아 줄까, 좆을 박아 줄까?”
당연히 좆이다. 이왕이면 단단한 쪽이 낫다.
그렇게 생각하며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그녀의 두 다리가 수혁의 어깨 위로 올려졌다.
다리가 어깨에 걸쳐지며 그녀의 엉덩이가 들렸다.
그리고 숨김없이 드러난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수혁이 얼굴을 처박았다.
“하윽!”
붉은 혀가 그녀의 질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벌어진 붉은 살을 헤집었다.
애액을 핥은 대신에 타액을 남긴 채로 수혁이 그녀의 구멍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하읏! 아! 아!”
엉덩이가 들린 채로 윤재가 신음을 내질렀다.
구멍을 덮은 수혁의 입술에서 젖은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빨아 대는 소리에 윤재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소리가 머리를 울릴 때마다 벌어진 구멍에서 물이 쏟아졌다.
그 물이 전부 수혁의 입 안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서 윤재는 흥분이 더해졌다.
게걸스럽게 윤재의 구멍을 빨던 수혁이 그녀의 아랫배를 쭉쭉 핥으며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젖가슴을 깨물며 그 가랑이 사이에 제 분신을 문질렀다.
젖은 음모를 불끈거리는 페니스로 문지르던 수혁이 질구에 제 귀두를 맞췄다.
“서윤재.”
그가 삽입하기 전에는 꼭 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을 윤재는 안다.
버릇처럼 수혁은 삽입하기 전에 꼭 제 이름을 불렀다.
마치 그녀가 제 앞에 있는 것이 실제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제 이름을 불렀다.
그럴 때마다 윤재는 이 남자가 제게 매인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 남자는 자신이 박는 여자가 서윤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윤재는 자신이 이 남자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잡아먹는 쪽은 남자지만, 목줄을 쥔 쪽은 윤재다.
결국 윤재는 정수혁의 목줄을 쥐고, 그 목줄에 매인 정수혁이 저를 먹어 치우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이 애매하면서도 우스운 관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윽!”
질구에 맞춰졌던 것이 단번에 안을 꿰뚫고 들어왔다.
뿌리 끝까지 뻑뻑하게 밀고 들어온 것이 그녀의 안쪽을 휘저었다.
“아! 하읏! 으, 읏! 하읏!”
푹 찔러 들어온 것이 빠져나갔다가 다시 찔러 들어왔다.
책상에 손을 짚은 채로 수혁이 윤재의 안으로 제 분신을 쑤셔 박았다.
그가 허리를 흔들 때마다 그의 어깨에 걸쳐진 윤재의 다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아! 아! 하읏! 아, 응! 으응!”
퍽퍽 쳐대는 허릿짓에 윤재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수혁의 분신을 집어삼킨 질구가 허옇게 거품을 만들어 냈다.
그 맞물린 틈으로 흘러내린 애액이 엉덩이를 적시고 책상을 적셨다.
차가운 책상과 뜨거운 페니스. 그리고 사정없이 쑤셔 박는 거센 허릿짓에 윤재는 눈을 감았다.
전신이 흔들렸다.
아랫구멍을 가득 채운 것은 그녀의 몸 안을 사정없이 찔러 댔다.
꽉 찼는데도 그녀의 몸은 꾸역꾸역 그를 받아들였다.
벌어진 붉은 구멍으로 검붉은 페니스가 쑥쑥 드나들었다.
“하응! 아! 아아아!”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는 윤재의 안으로 수혁이 그녀의 살을 전부 찢어 놓을 것처럼 페니스를 처박았다.
가장 깊은 곳에 왈칵 정액을 쏟아내고도 수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고작 한 번에 불과했다.
시작한 이상 한 번으로는 끝내지 않는다.
제 정액이 흘러나오는 구멍 안에 다시 페니스를 쑤셔 박으며 수혁이 허리를 흔들었다.
이제 어깨에서 내려온 윤재의 다리가 그의 허리 좌우에서 흔들렸다.
힘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다리를 잡아 제 허리에 감고 수혁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아래에서 셔츠 한 장만 걸친 서윤재가 세상에서 가장 음란한 표정으로 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수혁을 미치게 했다.
그녀의 안으로 허리를 쳐올리며 수혁이 두 번째 사정을 했다.
그건 일종의 영역 표시였다.
자신의 것이니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는 그런 영역 표시였다.
*
회장실에 보고서를 들고 들어갈 때는 스타킹을 신고 있던 윤재였지만, 회장실에서 나올 때는 스타킹을 신지 않은 맨다리였다.
다행스럽게 다들 내일까지 마쳐야 하는 업무가 있어서 누구도 스타킹의 행방에는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간식 좀 사 가지고 올게요.”
간식 담당은 따로 있지만 오늘은 윤재가 간식 담당을 자처했다.
어차피 이대로 자정을 넘겨야 한다. 회장실에서 40분가량을 허비했으니 새벽 2시는 지나야 오늘의 일이 마감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윤재는 노팬티다.
윤재의 팬티와 스타킹은 회장실 쓰레기통 안에 들어갔다.
흥건하게 젖은 팬티와 구멍이 뚫린 스타킹을 다시 입고 신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지금 스커트 안쪽이 휑해 윤재의 기분은 상당히 언짢았다.
빨리 속옷을 사서 이 찝찝함을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편의점에 팬티도 판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편의점에서 팬티를 파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다행스럽다.
8월이 끝나고 9월로 접어드는 밤의 공기는 낮보다는 시원했다.
한낮에는 아직도 덥지만 밤의 공기는 선선했다.
그렇다고 해도 온종일 빌딩 안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더운 것도 모르고 지나가는 여름이었지만 말이다.
빌딩을 나선 윤재가 문득 고개를 들어 44층의 높은 건물을 쳐다봤다.
엄청나게 높은 건물이다.
그리고 아직 절반 가까이나 불이 밝혀져 있다.
이런 괴물처럼 거대한 회사를 이끌고 갈 정수혁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저 재벌 3세?
창업주의 손자, 회장의 아들, 운 좋게 재벌가에 태어나서 금수저로 살다가 가업을 물려받는 정도로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정수혁은 무척이나 불안한 존재일 것이다.
이 거대한 몸집을 끌고 나갈 역량이 없는 새파란 애송이로 보일 수도 있다.
수혁이 아무리 스스로 만든 작은 회사를 성장 시켜 리더로서의 능력을 선보였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고 할 것이다.
경험이 부족하다, 너무 어리다, 노련함이 모자르다, 등등 수혁을 향해 쏟아질 부정적인 여론은 뻔하다.
그리고 그건 정수혁이라는 남자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윤재는 정수혁을 개인적으로 그렇게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정수혁은 누구보다 저 자리에 잘 어울리는 남자다.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건 인정한다. 정수혁은 괴물 같은 천재다.
9년 전에는 수혁이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자신은 죽어라 노력해도 수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싫고 짜증 났다.
수혁과 자신 사이에 메울 수 없는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타고난 천재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정수혁은 그 타고난 천재 중의 한 명이 분명하다.
쓰윽 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을 외우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내용들을 전부 완벽하게 이해한다.
그것이 수혁이 한 번도 만점을 놓치지 않았던 비결일 것이다.
그의 머리는 모든 문제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풀어 나가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이 그의 경영에서도 드러난다.
자본금도 거의 없는 작은 회사를 탄탄하게 만들어 내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가 그의 머릿속에는 있다.
그것이 그를 느긋하게 하는 것이다. 서두를 이유도 없고 초조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런 남자가 유일하게 서두르고 초조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관련된 일이다.
자신이 섹스를 거절하면 그의 표정은 초조하게 일그러진다.
그가 건네는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되돌려 주면 그 표정은 정말 볼만해진다.
그럴 때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던 윤재의 앞에 누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윤재야.”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은 기정이었다.
한기정. 결혼할 뻔한 남자.
참 기분 더럽게 파혼했던 남자.
절대 반갑지 않은 얼굴을 본 윤재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서윤재. 윤재야.”
무시하고 지나치려는 윤재를 쫓아온 기정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함부로 손목 잡는 거 성희롱이라는 거 알고 있긴 하지?”
제 손목을 잡은 손을 뿌리치며 윤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윤재야, 어디 가서 얘기 좀 하자.”
“아직 우리 사이에 할 이야기가 남았어?”
만약 한기정이 그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기정에게는 죄가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기정은 이 일의 피해자일 수 있었다.
정수혁의 미친 짓에 피해를 본 남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 자리를 걷어찬 것은 기정 자신이다.
일방적인 파혼의 강요.
그건 한기정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한다.
한경이 힘으로 몰아붙이는데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
그걸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입장 바꿔서 윤재 자신이 그런 상황이었어도 기정의 부친처럼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파혼이 답이었다.
파혼하지 않고 사랑 타령하면서 다 같이 망하는 것보다는 파혼을 택하는 것이 이성적인 결정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기정의 3년 타령.
그놈의 3년 타령 때문에 한기정에게 미안하던 마음도, 약간 남아 있던 측은지심도 다 없어졌다.
무책임하게 3년 후에 결혼하자는 말이나 하는 남자를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한기정은 파혼과는 별개로 윤재 자신에게 있어서 죄인이 되었다.
3년을 기다렸다가 결혼하자던 남자, 만약 그때도 결혼을 못 하면 더 시간을 끌어 보자던 남자.
이기적인 남자.
정수혁의 이기심과는 또 다른 면의 이기심을 보여 준 남자.
정수혁의 이기심은 차라리 자신을 기어이 차지하고 말겠다는 집요함이라도 있었다.
놓아주지 않겠다는,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이기심이었다.
그러나 이 남자의 이기심은 본인은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이쪽만 상처를 받아 가며 감수하라는 것이었다.
그저 자신만 기다리라는 이 남자를 윤재는 용서할 수 없을 뿐이다.
책임질 자신도 없어 하는 남자를 기약 없이 기다리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걸까.
자신이 그를 위해 그렇게까지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것일까.
그렇게 말하면 자신이 완전히 파혼당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고맙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이가 없는 남자다.
그리고 지금 찾아와서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난 너하고 할 말 없어.”
“30분만. 제발.”
“3분도 아까워.”
3분? 3초도 아깝다.
이 남자에게는 이미 충분한 시간을 줬다.
대학 시절 2년 그리고 졸업 후 3년. 그 정도 시간을 줬는데도 결국 이런 결말이 났는데 여기서 30분을 더 준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30분 만에 달라질 남자였다면 처음부터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정수혁이라면, 만약 정수혁이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굴었을까.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오는 상대 앞에서 정수혁은 일단 파혼하자고 나왔을까 아니면 망할 테면 망하라지, 라는 식으로 나왔을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뻔하다.
‘망하라고 해. 그래도 너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어. 중요한 건 그거 아냐? 다 잃고 네가 남는 거. 그러면 잃은 것도 아니지.’
수혁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신기했다. 수혁이 어떤 식으로 말할 건지 전부 예측되다니.
이것도 학습 효과인가?
만약 기정이 그런 식으로 나왔더라면 자신은 이 남자를 놓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감정은 상호적인 것이다.
한쪽의 일방적인 감정? 그게 진심이라면 결국에는 감정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정수혁이 지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듯이 말이다.
결국 자신도 이 남자에게, 이 남자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을 보면 자신들의 감정은 어쩌면 서로가 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편하고, 서로가 안락해서 머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안일함이 지금의 파국을 가져왔고 말이다.
기정을 무시하고 돌아선 윤재가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간식을 사서 돌아갈 뿐이다. 저런 남자 따위 무시하고.
그렇게 편의점을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뒤쫓는 발소리가 들렸다.
‘정말.’
경찰을, 아니 빌딩의 보안 요원을 부를 생각으로 윤재가 돌아서는 순간, 퍽. 그녀의 머리가 울렸다.
기정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친 것이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던 것인지 가방 안에 숨겨 온 주먹만 한 벽돌로 윤재의 머리를 내리치자 그녀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윤재야.”
쓰러진 윤재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 기정이 그녀를 질질 끌고 도로에 세워 둔 차로 가서 뒷좌석에 태웠다.
그리고 얼른 차를 출발시켰다.
뒷좌석에서 정신을 잃은 윤재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
“아.”
윤재가 나간 직후 책상 아래에서 수혁이 발견한 것은 보고서의 일부였다.
“뭐야, 서윤재. 이런 거나 빠뜨리고.”
물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책상에서 섹스를 한 탓에 그 과정에서 보고서 한 장이 책상 아래로 떨어진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걸 직접 가져다주는 상사는 나밖에 없을 텐데.”
수혁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로써 그녀를 찾아갈 구실이 생겼다.
원래는 퇴근해야 하지만 일부러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전략기획실을 찾아갈 구실까지 생겼다.
아직은 정식으로 회장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정도는 알고 있다.
특히 임원들.
새파란 놈이 회사의 머리가 된다는 것에 다들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걸 수혁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수혁 자신도 조금 어이가 없다.
아버지라는 인간이 자기는 죽을 테니까 죽고 난 뒤의 상황 따위는 상관없어서 아무렇게나 후임을 결정지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자신도 또라이지만 수혁이 보기에 아버지도 만만찮은 또라이다.
수혁은 부친과 왕래가 거의 없었지만 부친을 보는 순간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미친 눈빛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 광기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달아났을 것이다.
어머니가 감당하기에는 아버지라는 인간의 광기는 아마 독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조금 화려하고, 조금 사치스럽고, 또 사랑받기를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오랫동안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다가 마지막에는 윤재의 아버지와 재혼했다.
상대에게 사랑받기를 원했지만 그 사랑이 채워지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낀다던 어머니.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제 지배하에 넣기를 원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경우는 그것이 폭력으로 드러났고, 그 폭력이 이유가 되어 이혼하게 되면서 아버지는 양육권을 빼앗겼다.
아버지에게 있었던 그 폭력성이 자신에게도 없는 것이 아니다.
수혁은 자신이 충분히 폭력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신이 아버지와 다른 것은 그 폭력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법이다.
피는 후대로 이어지며 조금 더 개선되기 마련이다.
천재였지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자신은 천재지만 그 폭력을 다스릴 줄 안다.
아버지는 광기에 먹혀서 어머니를 잃었지만 자신은 광기를 다스릴 줄 안다.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목적을 잃지 않으면 광기는 다스릴 수 있는 부분이다.
아버지에게는 어머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순위인 어머니를 너무나도 쉽게 무시하고 짓밟았겠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서윤재는 항상 우선순위다.
그녀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광기도, 감정도 전부 죽여 버릴 수 있다.
자신의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이 광증에 스스로 목줄을 채우고 양손과 양발을 묶고 그녀 앞에 복종할 수 있다.
이게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다.
서윤재.
‘계속 보고 있었어.’
계속 보고 있었다. 입학식에서부터 계속.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살짝 올라간 눈 끝, 아무에게도 관심 없다는 눈, 항상 습관처럼 꾹 다물고 있는 입술. 집중하면 주변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
‘야, 이거 떨어뜨렸어.’
복도에서 부딪쳤을 때 그녀가 떨어뜨린 열쇠고리를 주워 들고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뒤쫓아서 어깨를 툭 치고 돌아보는 그녀의 손에 열쇠고리를 쥐여 줬을 때도 그녀의 시선은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문제집에 꽂혀 있었다.
‘고마워.’
형식적인 대답. 그저 건성인 감사.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었다.
첫 시험을 치고 난 다음 복도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자신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던 그녀의 시선이 저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심한 질투. 심한 짜증.
그 강렬한 눈빛에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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