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가 견문록 [6부]
유흥가 견문록 [6부]
6부- 업소녀가 아닌 여자는 절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아이고 형님!!!"
득의 양양하게 들어가는 염소를 따라 어둡고 긴 나이트의 통로를 따라간 우리는, 금새 염소가 지명하는 수많은 웨이터 중 한 명인 "슈퍼맨"을 볼 수 있었다.
웨이터 답게 화려한 헤어 스타일을 했지만 언뜻봐도 염소보다는 나이가 많으면 많았지 어려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렇게 서슴없이 형님 이라고 하며 징그러운 애교를 부리는 것을 보니, 역시나 돈버는게 쉽지 않구나 싶었다.
스테이지며 홀을 가득 매운 인원들. 물론 그것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구분이 잘 가지는 않았지만 사람은 정말 많았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부스가 아닌 홀로 안내되었고, 염소는 수행원들을 이끌고 유유히 들어가는 재벌가 회장같은 포스를 풍기며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 보았다.
"아 형님 왜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아아. 일이 바빠서. 오늘은 내가 모시는 형님들 데리고 왔으니까 잘 좀 부탁해."
너무나 능숙한 말투와 행동으로, 염소는 주머니에서 몇 만원을 꺼내 슈퍼맨의 자켓 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슈퍼맨은 우스꽝스럽게 고개까지 숙이며 염소에게 굽신거렸고, 염소는 양주를 주문하고는 본격적으로 슈퍼맨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야 퍼맨아. 오늘 애들 괜찮아?"
"아 형님. 오늘 작살나죠. 경기도 골빈년들은 오늘 다 모였어요."
"내가 말했잖아. 오늘 중요한 형님들 모시고 온거라 홈런 한방씩 쳐야 하는데...어떻게 좀 팍팍 꽂아 줄수 있겠어?"
"아 형님. 걱정마세요. 짜증나서 욕나올때까지 냄비들 넣어 드립니다."
용호상박. 능글맞은 염소도 염소지만 슈퍼맨의 말빨역시 당할 재간이 없었다.
염소에게 있어서 모두 "형님들"인 우리들은 그저 눈만 꿈벅 거리며 염소와 슈퍼맨의 대화를 경청했다.
"야 퍼맨아. 그래도 냄비들 줄 맥주는 인간적으로 좀 몇 개 가져와라. 어떻게 양주를 다 퍼주냐?"
"아...형님. 맥주 꼬불치는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에요 형님."
"에이. 이게 어디 스님 앞에서 염불외우고 자빠졌어. 까불지 말고 양주에 맥주 몇 병 감아와."
"아이 참..안되는데.."
"그리고, 혹시나 홈런 못치면 한 두시간 이후로는 골뱅이 위주로 좀 넣어줘."
"형님. 제 별명이 또 소면 아닙니까. 골뱅이의 친구 소면. 빤쓰끈 잘라가도 모를 정도로 꽐라된 골뱅이들 바로 투입시키겠슴다 형님."
"응응 그래그래. 너만 믿는다 퍼맨아."
"넵 형님! 즐거운 시간 되십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모르는 선수들의 대화를 보는 민간인들이야 말이 없었다.
한참후에 정말로 맥주 몇 병이 추가된 양주와 과일안주들이 셋팅되기 시작했다.
염소는 절대 맥주는 마시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부킹으로 들어온 여자들에게는 양주가 주기 아까우니 맥주를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 말이라고 거절하랴. 초보들은 그저 고수의 명령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슈퍼맨이가 아마 바로 여자들 데리고 올겁니다. 제가 들어오기 전에 가르쳐 드렸던거 잊지 않으셨죠?"
잊을리가 있으랴. 최 연장자인 문어는 나이트 입장 전 염소의 강의를 휴대폰 메모에 적어가며 암기하기도 했었다. 배운 것을 실제로 써먹으려 하니 가슴이 뛰었다.
똑똑똑.
얼음에 탄 양주를 홀짝이며 룸에 있는 노래방 기계를 가만히 들여다 볼 때쯤, 노크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염소의 말마따나 정말 순식간에 슈퍼맨이 부킹녀들을 대동하고 들어온 것이었다.
슈퍼맨은 우물쭈물하는 아가씨 두 명을 룸 안으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오오오. 앉아. 앉아."
염소가 부리나케 일어나며 안쪽 자리를 권했다.
두 명다 짧은 치마에 긴 머리를 하고, 조금은 짙은 화장을 한 여자들이었고, 딱 봐도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외모들이었다.
염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것에 조금은 실망한 듯, 그녀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염소의 말을 따르며 자리에 앉았다.
-여자들은 왠만하면 안쪽 자리에 앉혀라-
염소가 했던 강의의 제 1수칙이었다. 상대적으로 출입구와 가까운 쪽에 앉으면 나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안쪽에 앉는다 해서 못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옆에 남자가 앉아 있고 테이블이 있으니 미묘한 바리케이트가 쳐진다는 논리였다.
적어도 그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자는 넷인데, 여자는 둘이네...라고 속으로 되뇌이기 무섭게 슈퍼맨은 또 두 명의 여자를 끌고와 우리 방에 밀어 넣었다.
그녀들 역시 쭈뼛 거리다가 염소의 자리 배치에 따라 앉았고, 결국 우리는 각자 한 명의 파트너씩 생기게 된 셈이었다.
내 파트너는 처음 들어온 여자 중 한명이었다. 검정색 치마를 입고, 머리를 묶어 올려 목선을 드러낸 섹시한 차림이었다.
인상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붙는 옷을 입고도 당당할 만큼 몸매가 뛰어나 보였다.
여자는 몸매다 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던 킬러가 나를 슬쩍 바라보았지만, 결국 자신의 파트너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한잔 할래?"
술부터 권하라는 염소의 말을 충실히 이행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조금은 살짝 눈꼬리가 올라간 인상을 하고 있었고, 내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업소녀들의 해맑은 미소만 보다가, 이렇게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당황이 되었다.
"근데 어려보이네? 몇살이야?"
"스물 셋이요."
"와...어리네."
"오빠는요?"
"나는...서른.."
몇 살 깎긴 했지만 이것도 염소의 주문사항 이었다.
그녀는 형식적으로 고개만 끄덕 거리고는 맥주를 홀짝 거렸다.
피부가 완전 새하얀 것이 아기 피부 같았다.
젊은 여자에게서만 나는 특유의 달짝지근한 향기 같은 것이 심장을 뛰게 했다.
"무슨일해? 학생?"
"네. 오빠는 회사원이에요?"
"아...나는...증권쪽에서 일해."
이 역시 염소가 지정해 준 내 가상의 직업이었다. 놀랍게도 무표정했던 그녀의 얼굴에서 잠시 잠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오빠 이 근처 살아요?"
"아니. 나 서울 사는데...저기 있는 동생 따라서 놀러왔지, 넌?"
"나는 북문 살아요."
북문이 어딘지는 몰랐지만 뭐 아무튼 수원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호구 조사를 마치고, 나는 염소가 알려주었던 화제거리를 하나 둘 씩 꺼내었다.
"친구랑 왔어?"
"네. 저 쪽에 있는 애."
그녀의 손가락은 가장 나이가 있는 문어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둘이 같이 놀러왔다가 더블로 부킹의 마수에 걸려든 모양이었다.
다들 염소가 알려준 대로 각자의 파트너와 귓속말을 하며 이것저것 말을 하기 바빴다.
-셋이 같이온 여자는 거의 따먹을 확률이 적습니다. 대부분 그냥 춤추러 온 애들이거든요. 젤 잘 먹히는 건 둘이 온 경우입니다. 혼자 왔으면 더 좋지만, 여자의 경우는 혼자 잘 안오죠-
염소의 말을 되새기며,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여자가 지루할 틈 없이 말을 하며 재밌게 해주는 것인데, 그 점은 내가 약
간 부족한 점이 많았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여자가 말을 해주는 곳들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의 정적이 자연스레 흘렀다.
"증권이면 돈 많이 벌겠네요?"
그녀 쪽에서 걸려온 말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나는 이윽고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알려진 것처럼 많이 벌진 못하고 조금...먹고 살만은 하지."
"아하..."
또다시 말이 끊어질 위기. 나는 염소가 해주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며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맥주를 홀짝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 그거 알아? 증권가에 연예계 루머가 많은거."
이맘때 애들은 연예인의 뒷 이야기에 열광하곤 한다.....고 염소가 말해주었고, 증권가에 연예계 뒷 말이 많이 돈다는 것은 나 역시 익히 들어 아는 사실이었다.
역시나, 그녀는 빨리 말해 달라는 듯 눈빛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아무나 들먹이며 뻥만 치면 그만이다.
나는 슬쩍 양주로 입을 적시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염소가 알려준 것처럼 그럴싸한 뻥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의 말로는, 어차피 한 번 먹고 안 볼텐데 무슨 뻥인들 못치겠냐...라는 것이었지만, 거짓말에 능숙치 않으니 조금은 말이 막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양주가 들어가니 내 입은 술술 열리기 시작했다.
청순한 여자 연예인 누구와 중년 남자 배우 누가 동거를 했더라 등등의, 정말 얼토당토 않은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 얼토당토 하지 않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흥분시킨듯, 그 아이는 손뼉까지 쳐가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머..진짜?"
"이건 이 바닥에서 이미 유명해. 너 알지? 엑스파일 이런거 다 증권가에서 나오는거야."
"왜 증권가에는 그런말이 돌아요?"
이것에 대한 답변역시 염소의 사전 교육을 통해 습득되어 있었다.
"증권가라는게...정보로 먹고사는 시장이잖아. 정보에 대한 수요가 많으니까 소문이 돌고, 이런 저런 정보들이 잘 오고가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거든. 루머들이 맞는 경우가 꽤 많아. 최근에 결혼한 연예인 커플들 거의 다 증권가에서 정보 흘려서 기자들이 알아낸 경우라니까."
세상에. 내가 이렇게 청산 유수처럼 말하다니 경천동지하고 우리 부모님이 동지할 일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내 눈 앞의 아가씨는 인간 박강우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모르니 그냥 눈만 크게 뜨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화제를 잡는데 성공하니 말은 술술 풀렸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염소가 지정해준 직업으로 분해서, 염소가 지정해 준 대화를 나불거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슬쩍 웃음이 나왔지만 어떠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과연, 염소의 말대로 주도권을 잡고, 여유롭게 굴기 시작하니 그녀 쪽에서 더 말이 많아졌다.
여자를 꼬시려고 자꾸만 말을 거는 뉘앙스를 보이면 더욱 역효과였다.
그냥 놀러왔고, 부킹해주니 이야기 하는 것이다 라는 여유로움이 중요했다.
"아..오빠 나 화장실좀 다녀올게."
말이 잠시 끊기니 그녀가 내게 말해왔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친구라는 문어의 파트너와 눈빛을 나누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염소의 강의내용이 또 한번 뇌리를 스친다.
-형님. 여자가 화장실 다녀온다는 건 나가서 안 올 확률이 많아요. 나가면 또 다른 웨이터가 다른 곳에 앉힐거고...기집애들도 부킹하면서 이 남자 저 남자 당연히 재는 거거든요. 절대 다시 오겠지 라고 믿지 마시고 보내세요. 대신, 전화번호는 꼭 따셔야 합니다. 저장을 할 때는 이름 물어보고 이름으로 하지 마세요. 어차피 부킹하다가 까먹을게 뻔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그 여자 특징으로 저장해요.-
거기까지 기억해 낸 나는 그녀를 살짝 잡으며 물었다.
"아..전화번호좀 알려줄래?"
"응? 전화번호?"
"응. 도망가면 잡으려 가려고."
"아 뭐야 그게..."
그녀는 피식 웃었지만, 내 시덥잖은 농담에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내 전화기에 본인의 번호를 입력해 주었다.
염소의 말대로, 대부분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주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주고 나서 안받으면 그만이니까, 여자 입장에서도 괜시리 튕기면서 말싸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몸매 좋은 스물 셋-
그녀는 이렇게 내 폰에 저장되었고, 문어의 파트너인 그녀의 친구 역시 룸을 나갔다.
군중심리란 무서운 것인지, 그녀들과 일행이 아닌 킬러와 염소의 파트너들 역시 편의점을 가야 한다,
친구한테 이야기 하고 오겠다라는 뻔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비웠다. 문어는 아깝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자자. 걱정마세요 형님. 원래 한큐에 되는 법은 없으니까요. 다들 번호는 따셨죠?"
그의 질문에 우리는 순한 양들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염소는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자.그럼 이번에 들어오는 애들은 개인 플레이 하지 말고 다같이 놀아요. 제가 분위기 띄울테니까, 분위기 좋아지면 각자 개인 작업하시는 걸로 해요."
"키야...민간인 애들이 탱탱하니...왠지 모르게 더 맛있을거 같단 말이야."
킬러의 말에 염소는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말했다.
"그쵸?그쵸?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형님. 일반인 치마끈 풀어서 벗겨 먹는게 성취감 하나는 대박이라니까요. 게다가 야부리 잘 치면 하루에 두 세번 먹을수도 있어요. 업소에서 두 세번 줍니까? 한 번싸면 망고땡이지."
그의 말을 듣고보니 그런것도 같다 싶지만...사실 나는 업소쪽이 더 좋았다.
여자의 관심을 끄는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피곤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내가 염소의 말을 꾸준히 따르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 성취감이라는 녀석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똑똑똑.
우리가 웃고 떠들며, 맥주의 잔량을 확인하고 있을 그 때즈음에, 또 한번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비싼 양주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양주는 양주인 모양이다.
나도 슬슬 취기가 올라올 무렵, 염소를 제외한 30대들은 벌써 체력이 달려 허덕이고 있었다.
가장 연장자이자 내일이면 마흔이 되는 문어는 조만간 혼수 상태가 될것만 같았다.
염소는 최후의 보루이던 "골뱅이"카드를 슈퍼맨에게 제시했고, 그는 정말 별명이 소면이라도 되는 것처럼 금새 술이 곤죽이 된 여자를 데리고 와서 문어의 옆에 앉혔다.
"자자. 남은 분들 어쩌실래요? 킬러형님도 골뱅이 한 명 해드려요?"
문어는 먼저 일어난다는 말과 함께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골뱅이를 데리고 룸의 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녀는 연신 오빠~라는 말을 하며 비틀거렸고, 문어는 그녀의 허리에 두꺼운 팔뚝을 감아 쥐고는 실컷 그 여자를 주무르며 한걸음씩 움직이고 있었다.
염소는 그 모습을 보며 킬러에게 물었고, 킬러는 졸음이 오는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하기야 여자가 나가면 바로 들어오고, 또 그여자들이 나가면 바로 들어오는 폭풍 부킹에 시달렸으니, 아마 그도 나처럼 온몸에 진이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외로 두번째 골뱅이의 섭외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남은 세명이 30분째 술을 홀짝이고 나서야 슈퍼맨은 힘겹게 골뱅이를 데리고 킬
러의 옆에 앉혔다.
"에이씨..."
자신에게 배정된(?) 골뱅이를 본 킬러의 반응이 이해가 안되지는 않았다. 그냥 말만 여자지, 거의 폭탄에 가까운 수준의 여인이, 그것도 요란한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고 킬러의 옆에 벌렁 드러누웠던 것이었다.
나는 피곤한 와중에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고, 킬러는 똥씹은 표정으로 시계와 그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우리에게 말했다.
"급한데로 맛없는 밥이라도 먹어야지 뭐."
그리하여 킬러도 자신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갈것 같은 그 뚱녀를 데리고 사라졌다. 남은건 나와 염소 둘 뿐이었고, 염소는 약간은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것도 부탁할까요?"
"아냐. 난 됐어. 그냥 니가 알려준 방법으로 할래."
"그러세요. 그거 은근히 한 두명은 꼭 걸려든다니까요."
염소는 마치 내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말을 하며,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급하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염소가 해 주었던 강의의 마지막 내용이었다.
-부킹 몇 번 하고 나면 이제 여자 전화번호가 꽤 쌓였을 겁니다. 이제 그 여자들에게 단체문자를 보내는 겁니다. 백프로는 아니지만 십중팔구 그 중에 한 두명은 답장이 옵니다. 한 명이 걸리면 그 여자를 데리고 나가면 되는 거고, 두 명이 걸리면 그 중에 하나 골라서 드시는 겁니다-
학교다닐때에 이렇게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면 아마 나는 정말로 증권가에 있었을 거다.
나는 염소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휴대폰을 열었고, 그가 지시했던 대로 문자를 써내려갔다.
이미 내 휴대폰에는 처음 부킹을 했던 "몸매 좋은 스물셋"을 포함해서 "눈이 크고 섹시한 스물 다섯" "가슴 큰 30대 초반" "미니스커트 입은 스물 일곱"등등의 이름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나 아까 부킹한 증권사 오빤데...내 일행들 다 어디로 사라졌는데 괜찮으면 소주나 할래?내가 살께-
일행이 없다고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던 염소였다.
일행과 같이 있다고 하면 여자 입장에서도 뻘쭘함이나 불안감을 느끼기 쉽다는 것이었다.
증권사 오빠라고 유치하게 쓴 이유 역시 간단했다.
그 여자들역시 몇 시간동안 수많은 부킹을 하며 테이블을 돌았을 테니까...나를 떠올리게 할 만한 키워드를 입력하는 것이 중요했다.
"오케이 월척이다! 형님 저 먼저 나갑니다. 건투를 빌어요."
문자에 미숙한 내가 한 글자 한 글자씩 써내려갈 때 즈음, 이미 염소는 답장을 받았는지 부리나케 내게 인사를 하고는 나가 버렸다.
저 녀석...아까는 우리가 다 홈런 치는 것을 보고 나간다더니....말이 그새 홀랑 바뀌어 있는 모습이었다.
하기사, 내가 골뱅이를 고사했으니 그도 할말이 있긴 한 것이었다.
아무리 민간인이 좋다지만 인사 불성의 여자를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킬러의 파트너 같은 뚱녀라면 더더욱 사절이었다.
우우우웅..
휴대폰 진동이 이토록 반가운 적이 있던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눈 앞에 놓인, 이미 물반 양주반이 되어 버린 미지근한 액체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얼른 폴더를 열어 메세지를 확인했다.
"몸매 좋은 스물셋"
수신자 명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가장 처음에 부킹을 했던 그 여자애게서 문자가 온 것이었다.
문자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해 보았다.
-오빠 어딘데? 지금 밖이야?-
나는 얼른 "나이트 정문에서 기다릴게"라는 답장을 남기고는 재빨리 짐을 챙겨 일어났다.
스테이지를 한번도 나가지 않아서 인지, 문을 열자마자 뇌를 진동시킬 법한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와,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흔들어대는 젊은 남녀의 실루엣이 느껴졌다.
단연컨데, 나이트는 내가 도전할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체력을 더 보충하고 오면 모를까.
새벽 세시.
보통때 같으면 곧 죽어도 잘 시간인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며, 술먹은 남자 특유의 "발정"이 몸안에서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나이트 밖에서 비틀대는 여자들이 모두 먹잇감으로 보이는 착각마저 일어났다.
"오빠?"
너무 노골적인가 싶을 정도로 확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아까 처음에 부킹을 했던 검정 치마 차림의 그녀가 조금은 지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서 보니 안에서 본 것 보다는 덜 예쁜 듯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검정색 치마 안에 숨어 있을 속살을 생각하니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올것만 같았다.
"같이 왔다던 친구는?"
"아...몰라...오빠는?"
그 친구라는 아이도 이미 누군가의 마수에 걸려 나갔을 지도 몰랐다.
아 몰라..하는, 약간은 신경질적인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정상적인 헤어짐은 아닌 듯했다.
어디서 나온 재치인지, 나도 동병상련임을 알려 주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거짓말을 했다.
"나도 모르겠어. 여자들이랑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먼저 간다고 가더라고."
"이그. 하여간 참..."
그녀와 내 사이에 아주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이힐을 신어서 인지 165는 훌쩍 넘어 보였다.
치마 밑으로 뻗은 날씬한 다리.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얼굴도 몸매 덕에 예뻐 보였다.
초보의 첫 민간인 기행치고는 성공이라며, 나는 속으로 실컷 김치국을 마시며 말했다.
"그냥 가긴 심심하고...내가 술사줄게 소주나 마시러 가자."
"이 시간에...?"
이미 문자 받고 나왔으면서, 조금 튕기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기였다.
이런 일반인들과 비교도 안되는 여우들은 업소 여자들과 대화를 해서 그런건지 몰라도, 여자와 관계없던 나도 슬슬 그런 맥을 짚을수 있게 된 것이었다.
"널린게 포장마차고, 어차피 늦었잖아. 좀 출출하지 않아?"
나와는 달리 부킹만 하진 않았을 테고, 춤을 좀 추었다면 당연히 배가 고플 터였다.
그녀는 예의상 조금 망설 이는 표정을 짓더니 금새 나를 따라왔다.
날씬한 다리가 내 시야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신기하게도, 염소가 말했던 수칙들이 어느정도 먹히는 듯해서 놀라웠다.
녀석의 말대로 하나하나 전화번호 를 따서 한번에 문자를 뿌리는 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이었고, 그 전략은 재갈공명의 묘책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중박이상은 칠 만한 괜찮은 전략이었다.
결국에 도원결의(?)는 잠시 깨졌지만, 적군을 함락시킬 수 있다면야 아무렴 어떠하랴.
이런 전략을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나이트 근처에는 꽤 많은 숫자의 포장마차 들이 있었다.
조금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그것도 모자라 아무것도 없는 휴대폰만 만지작 대던 그녀는, 결국 나와 얼굴을 마주 보고 포장마차에 앉게 되었다.
"뭐 먹을래? 너도 소주 한 잔 할꺼지?"
역시나 초보라는 것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인지, 초조해진 나는 그녀에게 계속 소주를 강요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도 골뱅이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포장마차를 등지고 있던 모텔의 네온사인이, 왠지 모르게 내 속을 더욱더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나 역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처럼 열렬하게 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암튼 나도 꽤 출출해져 오고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몇명인지도 기억조차 안나는 여자애들에게 뭣도 모르는 증권가 이야기를 쉴새없이 뻐꾸기 처럼 떠들어 대었으니 배가 꺼졌어도 한참전에 꺼질 터였다.
"와 맛있겠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각종 술안주들은 역시나 군침을 돌게 하기 마련이었다.
오돌뼈를 가장한 제육볶음과 홍합탕, 그리고 우동 한 그릇 씩을 두고 우리는 서로 술잔을 주고 받았다.
새벽 3시에 모르는 처음 보는 젊은 여자와 술을 기울이는 내모습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유흥가를 접한지 불과 한 달여만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였다.
"아참, 근데 이름이 뭐야?"
"내 이름?"
"응."
"수정이야. 오수정."
"이름 이쁘네."
"뭐가 이뻐...그냥 흔한 이름인데..오빠는?"
그녀는 자연스레 말을 놓고 있었지만, 나는 당황하고야 말았다.
이름에 관한 질문을 들었을 때의 행동강령은 배운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고민한 나는 박강우라는 실명에 성만 바꿔 알려 주었고, 수정은 그런가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오빠. 아까 했던 이야기 또 해줘."
"음? 무슨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또 없어? 아까는 더 듣고 싶었는데 화장실이 급해서."
"에이 거짓말. 그냥 일어나려고 핑계 댄거 다 아는데."
"치..아니다 뭐."
어느새 일취월장한 내 눈치에 그녀는 당황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았다.
나는 점점 능숙해져 가는 내 모습에 스스로 감탄하며 건배를 권했고, 나보다 열살이나 어린 그녀는 당돌하게 잔을 부딪히고는 소주를 넘겼다.
"음....이건 진짜 확실한 건데 말이야.."
"응응."
천천히 반짝 거리기 시작하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내 두뇌는 빠르게 "뻥"을 양산해 내기 시작했다.
뭐가 좋을까. 환갑이 다 되가는 여자 배우와 요새 잘나가는 아이돌 남자 그룹의 동거설을 내놓을까?
아니야. 그건 너무터무니 없다. 순간, 염소가 했던 말 중에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뭐..여자 데리고 나가서 소주 마시면 알아서들 잘 이빨 까시겠지만...모텔 데리고 가시려면 슬슬 야한 이야기 시동 걸어두는 편이 작업에 편할겁니다.-
올커니. 섹스 스캔들로 한 번 가보자.
"너 여자 연예인들 중에서 제일 잘하는 여자가 누군지 알아?"
"뭘 잘해?"
"밤 일."
어맛! 하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수정.....을 상상했지만 그녀는 당돌하게도 흥미 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보다 일이 쉽게 풀린다는 생각에, 나는 요새 한창 어리고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몰이를 하는 어떤 여자 텔런트의 이름을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진짜? 이미지는 완전 깨끗하던데."
"나도 놀랐어. 그 여자 스폰서가 한 둘이 아닌데...하루밤 자고 나면 다들 정신을 못차린다더라."
첫 스타트가 좋으니 도약도 순조로웠다. 이제 저기 보이는 목표지점에 장대를 꽂아 넣고 비상해서 높이 뛰어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신 바예바 처럼 말이다.
"그리고 말이야..그 다음으로 유명한 여자가..."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용기가 실렸다.
나는 애드립이라고 치기엔 너무나 술술 뻥을 풀어나가며, 염소의 말마따나 "이빨"을 날리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는 수정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소주 안주로만 간간히 먹으며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말은 주로 뻥으로 지어낸 연예계 이야기였고, 그녀는 주로 내가 하는 일이나 연봉등등에 관한 주제로 질문을 했다.
이제 고작 스물 셋인데 남자의 조건에 혹 하다니...참 우리때와 많이 달라졌다는 씁쓸함도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라? 벌써 다 먹었네?"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비웠고, 수정이의 얼굴은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룸에서 홀짝인 양주만 해도 꽤 되는 셈이니, 더 마셨다가는 미신 바예바는 커녕 허들도 못넘는 퇴물이 될 것만 같았다.
브레이크를 밟아 줘야만 했다.
여기까지 와서 수포로 돌아가면, 정말로 나는 수원역까지 가서 유미를 만나야 하는 불상사가 생겨 버린다.
나이트 비용 내고 6만원을 더 낸다고? 생각만 해도 싫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염소가 말하는 민간인을 정복했을 때의 성취감을 느껴야만 한다는 요상스런 집착이 생겨났다.
꿀꺽.
중요한 대사를 쳐야할 시점이니 목젖으로 침이 넘어갔다.
그녀는 술을 더 시킬 마음이 없는지 내 얼굴만 바 라볼 뿐이었다.
조금 망설이던 나는, 진정하기 위해 담배를 피워 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날도 늦었고 한데...어디 조용한데 들어가서 맥주나 마실래? 피곤하기도 하고."
역시나 아무리 능숙해져도, 말을 할 때 어설픈 것은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수정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내가 가자고 하는 곳이 모텔임을 깨닫고는 살짝 눈을 흘겨 보였다.
나쁘지 않는 반응이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뭐야. 원래 목적이 그거였지?"
"으음? 나는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네...맥주 마시자는 건데."
하기사 나이트 처음 온 30대의, 그것도 연애나 여자 심리와는 담쌓던 놈이 한창 놀 나이의 20대 여우를 이길리가 없었다.
염소 녀석처럼 분위기를 쥐락펴락 하는 내공이나, 혹은 젊음에서 오는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수정이가 내게 먹인 한 방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어차피 늦었잖아. 좀 쉬었다 가."
그녀의 대답도 듣기전에, 나는 슬쩍 일어나 포장마차 아줌마에게 계산을 했다.
현금을 꼭 들고 다니는 성격 탓에, 조금 두툼한 내 지갑에 그녀의 시선이 슬쩍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은 곧 긍정! 침이 바싹바싹 마른다.
"오빠."
포장마차를 나오는데 수정이가 나를 부른다.
설마 간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해 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핸드백 하나를 옆에 끼고, 그녀는 목선이 잘 드러나게 머리를 다시 매만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감과 초조함 겨우 숨기고 수정이와 눈이 마주쳤을때, 그녀의 조그만 입술이 나를 향했다.
"맥주는 많이 마셔서 배불러. 그러니까 안 사가지고 들어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