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5 )

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5 )

M 망가조아 0 1303

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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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 그대를 만나기 전...








삼라만상이 쉴 곳을 찾을 시간에 어디선가 짝을 찾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푸웃!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




비몽사몽 하는 가운데, 술망나니, 건달, 놈팡이, 바람둥이 등, 온갖 잡다한 미사여구가 혼잡스럽게 머릿속을 휘젓고, 아직도 여흥이 파하지 않은 듯 노랫가락 소리와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뒷머리를 조여오는 지끈한 통증, 타는 듯한 목마름에 부스스 눈을 떠는 순간, 귓결에 희미하게 와 닿는 부엉이 울음소리에 피식 웃음을 베어 물었다.






“으응, 깼어?”




“목말라. 머리도 아프고...물 줘!”




“그러게. 무슨 원수가 졌다고 술을 그렇게나 많이 마셔?”




“어? 근데, 설향 누나가 왜 내 방에 있어? 철주 형님은?”




“하여튼 못 말려. 기억 안 나?”




이부자리를 가슴께로 끌어안으며 자리끼를 건네준 설향 누나가 퉁을 준다.




기억? 글쎄다.




벌컥벌컥, 단숨에 물병을 반이나 비우자 그제야 제법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공(철주)사장님은 월선 언니가 모시고 나갔겠지. 뭐”




“그건 그렇고, 오야지. 아니지, 마담 누님은 설향 누나가 여기 있는 거 알아? 몰라?”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 지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큰소리 탕탕 친걸. 아니, 불과 두 시간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 못 한단 말이야?”




“내가 그랬어? 아고, 죽었네.”




“이화 언니 그러더라. 설향이 너 오늘 밤 이 애랑 같이 자면 내일부터 당장 가게 나올 생각 접으라고.”




“이시...고, 고 이쁜 이마. 갈매기 몇 마리 날았겠는데.”




“책임져, 이거 모두 너 때문이야.”




“책임은 개뿔. 술 취해 주접 떠는 놈, 그냥 발로 콱! 차버리지 않고선...”




“말하는 모양새 하구는. 아니, 술도 취한 사람이 웬 힘이 또 그렇게나 세? 나를 덥석 안아 들고 이 방으로 들어와선, 휙 던져버리는데 발로 걷어찰 사이가 어딨어?”




“그, 그래? 내가 거시기 했어? 누나랑? 아니지? 그렇지? 그냥 잠만 잤지?”




“.....그, 그건 몰라, 자, 잠만 잤는지. 확인해 봄 알잖아.”




“어디. 봐 봐.”




설향 누나가 가슴께로 끌어안고 있는 이불을 내가 확 잡아채자 놀라는 누나의 아랫도리는 여전히 얇은 속치마가 둘려 있었다.




“뭐야? 치마저고리는 벗고. 속치마 함 보자.”




“얘, 얘가 미쳤어. 어딜 들추고 그래. 이 손 안 놓아?”




“히힛! 그럼, 가슴이 다 보이는데.”




뽀얗게 갓 쪄낸 찐빵 같은 유방, 누나는 가슴이 훤하게 드러났지만, 자기 속치마 근처엔 얼씬도 못 하게 내 손을 막무가내로 제지했다.


나는 내심 킥킥거리면서 못 이기는 척 한 걸음 물러났다.




“아. 누난, 더 자. 나가서 세수라도 좀 하고 올 테니.”




“그, 그냥 안채 들어갔다 와, 이모님 아직 안 주무시는지도 몰라.”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내 등에다 대고 설향 누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화 누님이, 나 왔다고 또 일렀구나. 그렇지?”




“당근이지. 제발 철 좀 들어라. 철 좀 들어. 허구한 날 쌈질에 여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말은 안 하시지만 이모님 속이 얼마나 상하시는지 몰라서 그래?”




“아쭈, 점점 누나도 닮아가네. 어쩜 그렇게 이화 누님이랑 똑같은 잔소리?”




“하여튼 난 몰라. 네 일 네가 알아서 할 테지만.”




“훗! 좋아. 그럼 누나 혼자 잘자. 난, 안채 들렀다가 바로 갈 테니까.”




“아휴. 저 능글능글 바람둥이 구렁이 같은 자식.”






화난 듯이 이불을 확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뒤집어서 써 버리는 누나, 나는 미닫이문으로 슬그머니 걸음을 옮기다 말고는 휙!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설향이 누난 빼꼼히 이불자락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




달은 이미 저만치로 기울었고, 후원 안뜰에는 소슬한 바람만 스쳐 지나간다. 자잘한 돌이 깔린 바닥을 자박자박 울리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으음. 정말이네. 이 시간에 여태 잠들지 못하고 있었나 봐"




이모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이상하게 가슴 한 귀퉁이에서 찡하는 울림이 전해져왔다.




"이.....모!!! "




“이모. 자?”


“들어와. 이모, 아직 안 자”




“...........!!?”




내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장지문을 스르르 열고 한 발을 내딛던 나는 움찔했다.




내실은 주인의 취향을 말해주듯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소박하고 단아하게 배치되어 있고, 묵향이 물씬 풍길 듯한 난(蘭) 그림이 걸려있는 벽체 아래로 싱그러운 화분들이 놓여있다.


올 때마다 언제나 느끼지만, 헝클어진 내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는 그런 분위기다.






근데...




이모는 보료 위에 앉아 탁자 위의 책을 들추고 있는데 아랫목 이부자리에 누군가가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학처럼 고고하게 홀로 살아 온 이모가 내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을 했을 리는 없을 텐데.




나는 움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 누구야? 마담 누나는 아닐 테고.”




“문이나 닫아. 바깥바람이 아직은 쌀쌀해.”




“흠 흠, 그. 그래, 무, 문. 닫아야지. 자는 사람 추울 텐데, 밤바람이.”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더듬거렸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아직 의문이다.


잠자고 있는 그녀에게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느낀 탓인지. 운명 같은 것은 믿지 않았는데,




“아직 잠자리가 마땅찮아서 우선 내 방에 재웠어”




“빈방이 한두 개도 아니고. 오라, 인제 보니 새로 온 여자애구나.”




그제야 이모는 보고 있던 책장을 덮으며 내게로 시선을 던져왔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같은 눈길이라고 할까? 나는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눈을 이모 얼굴에서 찾고 있었다.




“아냐, 처지가 딱한 애라 내가 수양딸 삼으려고 얼마 전에 데려왔어”




“그게 그거지 뭐. 수양딸이 기생 되는 거잖아.”




“녀석하고는. 앉기나 해. 천장 무너지지 않으니까”




“그래, 들어왔으니 앉아야지. 흠, 흠, 근데, 동남아에서 살다 온 여자야? 왜 얼굴색이 저 모양이야?”




“동남아라니? 바닷가에서 생활했으니 피부가 그을려서 그런 거지.”




“바닷가...?”




“....후~ 술 냄새.”




내가 다가가 앉자 이모는, 그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코를 찡긋했다.




“어? 미안, 이모. 근데 몇 살이나 먹었어? 아직 어린애 같구만.”




“허, 차암,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으니? 그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집엔 온 거야? 다신 안 온다고 그 난리를 치고선.”




“쯥, 뭐, 먹고 살려니까. 사실은, 모시는 형님 덕분에 목에 때 좀 벗기러 온겨. 술도 고팠고.”




“녀석아, 이모 앞에서는 좀 고운 말 쓰면 안 되니? 말투가 그게 뭐니?”




“칫! 우리 고결하신 이모랑은 취향이 반대니까. 이모는 그 고운 손으로 책장이나 들추고 난이나 치지만, 난 걸핏하면 쌈박질에 여자나 후리고.”




“자랑이다, 그래서 이젠 방에 있는 누나들까지 집적댄 거야?”




“집적대긴 누가. 그, 그냥, 술에 취해서.”




“핑계하고는. 쯧쯧!”




분명 이화 누님이 다 꼬아 바친 모양이었다. 이모는 알게 모르게 가볍게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




애초에는 이모 얼굴이나 보고 곧장 설향 누나가 있는 내 방으로 돌아오려고 했었다. 새롭게 이 차전을 치러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쯧쯧, 가볍게 혀를 차면서도, 내 폐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다보는 이모를 선뜻 외면하고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에는 뭔가 미련이 남아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바로 그때,




깊이 잠들어 있던 그 여자애가 상체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면서 나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했는데, 목 언저리까지 씌워져 있던 이불자락이 조금 아래로 걷혔다.




“며. 몇 살이나 먹었냐니깐? 것도 못 알려줘?”




“으응, 21살.”




“이름은?”




“....박 순...애”






이모는 나의 채근에 마지못한 듯 대답을 해 주면서 몸을 약간 옮겨 앉았다.




그녀의 작은 몸부림으로 걷혀 내린 이불, 이모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이불자락을 끌어당겨 덮어주는 그 짧은 순간, 나의 시선은 이모의 손길을 따라 빙그르르 가자미 눈알을 만들어 움직였고, 그리고 갑자기 머리 뒷골이 찡 하는 전율을 느껴야만 했다.




나의 두 눈을 가득 헤집고 찔러 들어온 그 그림.




그랬다. 하얀 속적삼에 가려져 붕긋하니 솟아오른 수밀도(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맛이 단 복숭아: 여성의 가슴 중 최, 최상급 )의 아찔한 그림.


그것은 도저히 21살 정상적인 여자의 가슴 형태가 아니었다.




가슴골을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수밀도 그림자의 실루엣만 눈에 담았는데도 숨이 턱 막혀왔다.


가슴이 두근거려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일어나려던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와우~" 하는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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