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계약 #11장(3)

짐승 계약 #11장(3)

M 망가조아 0 1661

짐승 계약 #11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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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전화라 잠시 통화 좀 하고 올게.”


“그래. 갔다 와.”






서희는 TV 속 드라마에 빠진 듯 희민에게 말하면서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내심 안심하며 희민은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바깥으로 나왔다. 


서희 혼자 쓰는 병실이라 웬만한 통화는 안에서 하기 때문에 의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었다.






병원 비상구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며 희민이 전화를 받았다. 남 실장의 전화였다.






“네. 실장님.”


“한희민 씨. 혹시 최지윤이라는 사람 압니까?






끼익.






막 비상구 문을 밀던 희민이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가늘였다.






“누구라고요?”


“최지윤이요. 세양그룹 딸이니 아실 것 같은데.






희민이 미간을 좁히며 문을 밀던 손에 힘을 줬다. 


그대로 비상구 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문을 닫았다.






비상구 계단 앞의 벽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비를 뿜을 것 같은 흐린 하늘을 보며 희민이 한 층을 내려갔다. 


유리창 앞에 선 희민이 말했다.






“회사 내 행사 때 종종 본 적은 있어요.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눈 건 두 번밖에 없지만.”






“두 번이라…….






남 실장이 생각하는 듯 말끝을 흐리자 희민이 초조하게 물었다.






“그런데 최지윤은 왜요?”


“정말 그게 답니까?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이상하게 최지윤이 등장하는 부분이 많은데.




“저도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떠올려 봤지만…… 그게 다였어요.”


“의심스러운 부분이라면 어떤?




“그 사건 직전의 창립 기념일 행사에서 최지윤을 만났는데 마치 그 일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었거든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희민이 손톱을 지그시 물었다.






‘최지윤과 연관된 건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어디에서 어떻게 최지윤이 등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번 등장한다는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었다. 


이미 수도 없이 생각해 봤지만 그 일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인데.






“그렇군요. 우선 그 부분을 확인하려고 전화드린 겁니다. 더 진행되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저기, 잠시만요.”






끊으려는 남 실장을 희민이 다시 불렀다.






“말씀하시죠.


“최지윤이 그 일과 얽힌 건 확실한 건가요?”




“결정적으로 연관된 건 아직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을 탐색하다 보니 최지윤의 지인이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연관된 부분이 있어서 확인차 연락드린 겁니다.




“아…… 그런 거군요. 알겠습니다.”






희민이 허탈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통화를 종료하려는데 이번엔 남 실장의 목소리가 그녀를 잡았다.






“지금 생각난 것이 있는데, 끊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네.”






희민이 휴대폰을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태원그룹의 차영주 실장은 알고 있습니까?






차영…….






희민은 순간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차영주가 왜? 차 실장의 이름에 눈을 홉뜨는데 남 실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태원그룹의 차영주, 그리고 김지훈. 이 두 사람도 파다 보니 등장하는 일이 많은데 혹시 아십니까?






희민이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를 냈다.






“아뇨. 전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도 거기 얽혀 있나요?”






분명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발설하면 계약 조건에 위배되기 때문에 희민은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태연한 목소리를 가장했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직 뚜렷한 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까지 얽혀 있는지는 사건 전체의 윤곽이 나오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희민은 목이 졸리는 듯 답답해져 인상을 쓰고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뭔가 말하려 입술만 달싹이고 있는데 남 실장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멍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희민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차영주와 김지훈이라면…….






‘설마…… 그 남자가?’






희민의 눈이 흔들렸다.






만약 당시에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내몰지 않았다면 그 계약은 분명 하지 않았을 거였다.






‘계약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서정혁이 날 망가뜨릴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라면?’






서정혁에겐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재력이 있었다.






‘아닐 가능성도 있어.’






자신을 교도소에서 빼내 오기 위해 차 실장이 직접 개입한 건 사실이었다. 


거기에 김지훈이 껴 있을 수도 있는 거였고. 그 과정 때문에 남 실장의 조사에 걸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확인하기 위해선 그들 이름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물어봐야 하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 관심을 갖는 걸 남 실장이 이상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말을 돌려서 들키지 않게 물어본다면……?






‘아니야. 그건 너무 위험해.’






희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묻다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남 실장에게 들키는 건 더 큰 위험이었다. 명백한 계약 위반이니까. 


계약 위반이 확인될 경우 위약금은 자신이 받은 돈 이상이다. 


그런 천문학적인 액수에 삶이 짓눌리는 건 이미 교도소에서 충분히 겪었다.


다신 그런 위험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하아, 대체 뭐가 뭔지…….”






답답한 숨을 내쉰 희민은 비상구 계단에 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도 더 흐려져 그녀의 기분처럼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 


복잡한 얼굴로 병원 주차장을 내려다보는 희민의 눈이 순간 커졌다.






서정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기에 느른히 기댄 채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자는 서정혁이 맞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희민은 곧장 몸을 돌려 도망치듯 계단 위를 올라갔다.






비상구에서 나와 병실로 빠르게 걸어간 희민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의 얼굴을 본 서희가 의아하게 물었다.






“회사에 큰일이라도 생긴 거야? 표정이 왜 그래?”


“응.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나 가 볼게. 엄마.”






희민이 급히 가방을 챙기며 말하자 서희가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안 좋은 일 생긴 거야?”


“아니야. 가서 해결하면 돼. 걱정하지 마.”




“그래. 어서 가 봐.”


“또 올게.”






서둘러서 병실을 나온 희민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거울 안에 초조함이 잔뜩 묻어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저 남자가 언제부터 저기 있던 거지?’






아니, 잠깐. 지금 나갔다가 잡히면…….






희민이 손톱을 잘근거렸다. 손톱을 물어뜯는 건 어릴 때 초조해지면 하던 버릇이었다. 


예전에 고친 습관이었는데 아까부터 다시 나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서정혁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완벽히 평정을 잃었다.






“어떻게 하면…….”






희민이 손톱을 문 채 중얼거렸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주차장에 바로 서정혁이 서 있을 거였다. 


그의 차 바로 옆에 자신의 차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 떠오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역시 알고 있었던 거다. 처음부터.






‘그럼 최근 미행하는 기분이 들었던 건 저 남자 때문이었다는 건가?’






규태와 있던 곳에 그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이상했다.






그땐 갑자기 서정혁이 나타났기 때문에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미행한 게 아니라면 하필 그 순간 그가 우연히 나타날 리는 없었다.






만약 자신을 파멸시킨 그 사건을 이끈 게 서정혁이고…… 그 계약이 끝난 뒤에도 계속 미행하며 자신이 사람을 고용해서 그 일을 파고 있는 걸 알게 된 상황이라면?






‘……아.’






거울 속으로 흔들리는 눈을 본 희민이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설사 저 남자가 벌인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피해자에 불과하다. 


두려워서 피하고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아직 그 일에 대해선 어떠한 것도 밝혀지지 않은 게 사실이고.






머릿속으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한 희민이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나왔다. 


병동 주차장으로 걸어가자 자신을 주시하는 정혁과 눈이 마주쳤다.






“…….”






희민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가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차에 느른히 기대서 있는 정혁의 눈빛이 빛났다. 


먹잇감을 사정거리 내에서 포착했을 때의 육식동물 같은 눈빛이었다.






멜란지 컬러 슬링백을 신은 희민의 다리가 정혁 앞에서 멈춰 섰다.






“이런 우연은 이제 없었으면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희민이 라인이 예쁜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정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당신 어머니 병실 앞 주차장의 당신 차 옆에 서 있는 게 우연인 것 같습니까?”




“…….”




“아닌데. 우연.”






정혁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보고 있는 그녀를 정혁이 느긋한 얼굴로 마주 봤다. 희민은 그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다.






‘전혀 모르겠어.’






희민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 남자가 그 일을 벌이고 자신을 감시하려고 이러는 건지 파악하려 했지만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남자라는 걸 새삼 깨달을 뿐이었다. 애초에 자신은 서정혁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 얼굴이 가면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왜 일부러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는 건데요.”


“그건 얼마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당신 붙잡을 거라고.”






초조함을 느끼는 희민과 달리 정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답지 않은 은은한 미소까지 띠고 있으니 오히려 더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붙잡힐 생각 없다고 했잖아요. 못 알아들었어요?”






조급한 만큼 희민의 목소리가 까칠하게 흘러나왔다.






“그때 일 누설조차 하지 말라고 해 놓고 이제 와 붙잡아서 뭘 어쩌겠다고. 끝난 계약 다시 할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희민이 가시를 세우듯 말하자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정혁이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그가 얼굴을 쑥 내려서 가까워지자 희민이 숨을 삼키고 고개를 뒤로 물렸다.






“뭐 하는 거예요?”


“뭐가 그렇게 두려워요?”






희민의 두 눈을 정혁이 가까이서 천천히 번갈아 봤다.






“지금 꽤나 절박해 보이는데, 나에게 잡힐 것 같아 두려워서 그럽니까?”






휘어 감아 오는 시선에 희민이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당신이 무작정 찾아오니까 그렇잖아요. 그렇게 사람 관찰하듯 쳐다보지 말…….”






정혁이 그녀의 턱을 잡아 다시 자신 쪽으로 돌렸다. 꼼짝없이 붙들린 시선에 희민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얼마 전 날 봤을 때도 이런 눈이었는데. 당신은.”




“…….”






가까이서 응시하는 눈동자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힘이 있었다. 


얼굴을 잡고 고정한 손을 뿌리치긴커녕 다리가 풀리지 않게 버티고 있는 게 다행일 정도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희민이 눈을 치켜떴다. 이 남자에게 완전히 흔들리고 있으면서도 그걸 들킬까 봐 더 눈에 힘을 줬다.


정혁이 희민의 턱을 잡고 있는 엄지를 그녀의 입술에 갖다 댔다.






“!”






옅게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지그시 누르듯 입술 모양에 따라 천천히 훑는 움직임에 희민의 입매에 힘이 들어갔다.






“난 지금 무척 인내하고 있는 중인데.”






작고 도톰한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훑고 지나간 자리가 꾹 눌렸다가 탄성 있게 본래의 윤곽으로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가 익숙한 색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얼마나 더 참아야 잡혀 줄 겁니까?”






당장 삼키고 빨 것 같은 정혁의 강렬한 시선에 희민은 심장이 마구잡이로 움켜잡힌 채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말해 봐요. 내 인내가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정말 인내가 바닥난 듯 그의 매끈한 미간이 구겨졌다. 


거칠어진 숨결이 낮은 목소리와 합쳐져 희민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시선이 붙들린 순간부터 온몸에 열기가 퍼져 숨이 막힐 정도였다.






‘안 돼.’






탁.






아찔해지는 기분에 희민이 정신을 차리고 정혁을 밀어 냈다. 


서로의 간격이 벌어진 상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희민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말할 이유 없어요. 당신 인내도, 나와는 상관없고.”




“…….”






정혁이 그녀를 놓친 자신의 손을 여전히 열기에 물든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이런 무의미한 일도 그만해요. 당신, 무의미한 거 싫어하잖아.”






냉소 어린 목소리로 말한 희민이 그를 노려봤다.






“몇 번을 찾아와도 내 대답은 같을 거니까.”






몸을 돌린 희민이 자신의 차 문을 열었다. 빠르게 운전석에 올라타 문을 닫으려는데 정혁이 그 문을 잡았다.


희민이 멈칫해서 올려다보자 차 문을 잡은 상태로 정혁이 상체를 안쪽으로 숙였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마.”


“네?”






희민이 되묻는데 정혁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낮게 한숨을 내쉰 그가 몸을 천천히 다시 세웠다.






“……그때 했던 말, 후회하고 있으니까.”






일렁이는 눈으로 말한 정혁이 차 문을 닫아 줬다. 


그가 순순히 뒤로 물러나자 그 모습을 확인한 희민이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차를 빼서 주차장을 나오며 뒤를 봤을 때 정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얼른 시선을 떼어 낸 희민이 숨을 들이켜고 전방을 바라봤다. 


도망치듯 병원을 벗어나는 희민의 눈동자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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