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위 포식자 - 8.포식자의 영역

최상위 포식자 - 8.포식자의 영역

M 망가조아 0 1665

최상위 포식자 - 8.포식자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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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포식자의 영역








[부재중 전화 57건.]


[미확인 문자 109건.]


[확인하지 않은 톡 205건.]






내역만 확인한 영주가 얼른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이게 전부 사흘 사이에 온 것들이다.


사흘이다, 사흘.


이제 고작 사흘 지났다.


그런데 40일은 지난 기분이 드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카드도 쓸 수 없고…….”






다행스러운 것은 도망칠 때 버스터미널에서 카드로 현금 인출을 제법 해놨다는 것이다.


설이현의 저택에서 도망쳐서 택시를 타고 무작정 터미널에 와서 영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현금 인출이었다.






설이현 정도면 경찰보다 더 빠르게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카드 사용 내역이나 휴대폰 위치 추적, 그런 것을 하지 못할 인간이 아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없는 죄도 뒤집어씌워서 자신을 수배자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영주도 안다.


그런 위치에 있는 남자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지금 자신은 위협당하고 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엉망진창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버틸까…….”






지금 지갑 안에 있는 현금은 165만 원이 전부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액수다.


지금이라도 카드를 사용하면 현금을 더 찾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기록이 남는다.






지금 묵고 있는 펜션의 숙박비도 현금으로 내고 있고 먹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전부 현금이다.


수중에 남아 있는 165만 원으로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언제까지나 이 펜션에 숨어 있을 수는 없다.






버스를 타고 가장 멀리까지 도망쳐온 이곳은 포항에서도 조금 더 지나야 나오는 진짜 바다를 곁에 끼고 있는 작은 동네다.


버스를 타고 지나던 중에 [아저씨! 잠깐만요, 여기서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를 용감하게 외친 끝에 도중에 내린 장소이기도 하다.






작은 펜션이 두 곳이 있고, 밤에는 문을 닫는 편의점이 1곳, 그리고 작은 마트 2개에 고만고만한 식당들이 세 곳.


낚시용품을 파는 작은 슈퍼가 또 하나.


30분이면 다 걷는 작은 해변.


펜션에서 걸어서 10분이 걸리는 작은 방파제.


그리고 방파제 안쪽에 정박해 있는 역시 작은 어선들 6척이 전부인 그런 곳에서 잘도 내렸다.


지금은 비수기인데다 여기는 손님도 적은지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반가워 숙박비를 할인까지 받았다.






여기에 작정하고 숨어 있으면 설이현은 자신을 절대로 못 찾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무작정, 언제까지나 있을 수는 없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돈은 한 달 숙박비도 안 된다.


아무리 아껴도 숙박비와 식비로 나가면 보름에서 이십일 정도가 버틸 수 있는 전부다.






물론 영주도 최악의 경우를 위해서 방법은 생각해 놨다.


돈이 떨어지면 일단 가까운 소도시로 이동해서 다시 현금을 잔뜩 찾은 다음에 곧장 그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치는 거다.


카드 내역이 떠서 설이현이 그곳까지 찾아온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자신은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 다시 숨어 있을 테니까 아마 괜찮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옮겨 다니면 되지만, 문제는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옮겨 다니며 숨어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돈은 언젠가는 바닥이 나고, 취직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에는 엄마가 보낸 것들도 많다.






아마 엄마는 지금쯤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가 더 화가 났을까 아니면 설이현이 더 화가 났을까?


화는 엄마가 더 많이 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 무서운 쪽은 설이현이다.






“설주원은 죽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였을까 싶다가도 설이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뒷골이 서늘해졌다.






“설이현은 언제 날 포기할까…….”






참 끈질긴 인간이다.


아주 잠깐 봤지만 부재중 전화와 톡, 문자의 절반은 설이현이 보낸 것이다.


내용은 [너 어디야], [너, 내가 찾아내기 전에 네 발로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어떤 놈인지 모르지?], [너 잡히면 각오해]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최근에 보낸 것은 어제.


사흘 만에 포기하겠는가마는, 그래도 포기해 줬으면 싶다.






자신도 설주원에게 속은 거라고 제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면 안 되는 걸까.


꼭 자신을 잡아서 화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나는 발가락의 때 같은 존재일 텐데…….”






발가락의 때. 지나가는 개미. 가엾은 날파리. 초파리, 하루살이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한 자신을 그냥 포기해 주고 잊어 주면 좋으련만.






“임신했을까 봐 그러나?”






한 달 후에 임신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면 좀 괜찮아지려나?






“그럴지도…….”






어쩌면 설이현이 이렇게 집요하게 구는 건 임신 여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 한 달만 버텨 보자.”






한 달.




한 달이면 설이현의 관심이 식든가, 아니면 자신의 임신 여부가 결정 날 수 있는 시간이다.


고작 자신 같은 피식자에게 설이현이 한 달씩이나 관심을 가지겠는가.


부디 그렇게 희망의 끈을 잡아 본다.


설이현에게 엄청나게 바쁜 일들이 몰아쳐서 자신을 아예 잊어 주기를 바라본다.


그것도 아니면 한 달이 지나 임신 여부가 밝혀져 그가 안심하고 자신을 놓아주기를 바라던지.


어떤 식으로든 한 달은 버텨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돈이 많으니까.”






5만 원권으로 두둑한 지갑을 든든하게 만져 본 영주가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치, 그리고 음료수를 사서 펜션으로 돌아왔다.


조리가 가능한 펜션이지만 영주는 음식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고작해야 라면 정도밖에는 할 수 있는 음식이 없다.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정도이지만, 김치볶음밥은 반반의 확률로 실패한다.


가끔은 라면도 물을 못 맞추면 실패하곤 하지만 말이다




.


이건 엄마를 닮은 거다.


엄마는 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영향을 받아 영주도 요리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결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싱글 라이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요리를 못해도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펜션에 혼자 갇히게 되자 제일 난감한 부분이 바로 음식이다.


근처에 세 곳밖에 없는 식당들의 메뉴는 전부 영주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횟집, 매운탕, 영주는 그런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흘 동안 라면과 즉석밥, 이런 식의 편의점 메뉴들로 때우고 있는 중이다.






아직 사흘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음식이 질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괜찮지만 아마 이 상태로 열흘 정도 지나면 분명 질릴 것이다.


하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은 있다.






펜션 앞에 멈춰 선 영주가 작은 방파제 너머로 지고 있는 석양을 바라봤다.


이 작은 바닷가의 작은 방파제 너머로 보이는 일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저 지는 석양의 붉은 색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은 방파제 안에 정박해 있는 작은 어선들. 


그리고 방파제 아래쪽으로 쌓여있는 그물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방파제의 끝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거기에 지붕이 낮은 집들과 집과 집 사이를 나누고 있는 돌담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펜션까지. 


이 모든 것 위로 물들어 오는 붉은 석양이라서 아름다운 것이다.


마치 에곤 실레의 [빨래가 널린 집]의 풍경처럼 아름답다.






이곳에 온 지 이제 사흘이지만 사흘 동안 영주는 단 한 번의 석양도 빠뜨리지 않고 이렇게 서서 바라봤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상황이지만 아마 여기서 본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누구나 가슴에 잊지 못할 풍경 하나쯤은 담고 산다고 하면 자신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풍경이 저 풍경이 아닐까.






“그래도 저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좋은 점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영주가 펜션 안으로 들어섰다.










영주가 사용하는 방은 2층이다.


발코니도 있어도 창을 열고 나가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이제는 석양도 져서 어두운 바다와 방파제의 가로등밖에는 보이지 않는 밤 풍경이지만 아침이면 제일 먼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다.






영주가 이 방에서 하는 일은 단조롭다.


낮잠을 자거나 1층 로비에서 가지고 올라온 책과 잡지를 읽는 것이 전부다.






영주는 원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은 더더욱 미디어 쪽은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뉴스만 틀면 얼굴을 비추는 설이현 때문이다.


설 회장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SC그룹의 젊은 리더가 된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겠지. 상황도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일 것까지야…….’






설이현의 입장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가장 민감한 시기에 그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일이 일어났으니 그가 화가 난 것도 이해를 하고, 그의 입장에서 문젯거리를 사전에 없애야 한다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말로 찬찬히 설명해 가며 풀어도 될 문제를 피까지 봐가면서 처리하는 그의 방식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






‘설주원은 정말 죽었을까.’






하루에 몇 번이나 설주원이 정말 죽었을까? 죽었다면 어떻게 죽었을까? 설이현은 아직도 자신을 찾고 있을까?설이현에게 잡히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낮잠이라도 들면 어김없이 악몽을 꾸고 깨곤 했다.






물론 악몽의 정체는 설이현이다.


제 앞에 나타난 설이현이 저를 드럼통에 넣고 시멘트를 부으라고 명령을 내리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시멘트를 제가 들어 있는 드럼통에 부으려고 할 때 비명을 지르며 깬 것이 세 번이나 된다.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영화 취향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누아르 영화만 보니 생각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일 수도 있다.






“다 끓었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의 불을 끈 다음 영주가 작은 테이블 위로 냄비를 옮겼다.


그리고 작은 앞 접시와 김치를 담은 접시까지 세팅을 마치고 의자를 당길 때였다.






똑똑똑-.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영주가 쥐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장님이신가?”






이 펜션은 60대로 보이는 마른 체형의 여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성수기에는 알바생을 고용한다고 하지만 이런 비수기에는 사장님이 직접 청소와 관리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이 펜션에는 지금 그 여사장과 영주밖에는 없다.


다른 손님들도 없는 걸로 안다.


그래서 당연히 펜션 여사장일 거라 생각한 영주가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






문을 여는 순간 영주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시커먼 옷이었다.


아니, 새카만 수트가 제일 먼저 시야를 점령했고 그다음으로는 흰 셔츠, 날렵한 턱의 순서로 눈 안에 들어왔다.






“어, 어, 어떻게…….”






영주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겁에 질린 탓에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숨을 수 있을 줄 알았어?”






빈정거리며 들어온 남자가 방문을 닫았다.












쾅-.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죽음을 선고하는 망치의 소리처럼 귀를 울렸다.






“쥐새끼처럼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았어?”


“그,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방에 가 있으라고 했지 도망치라고 했었나? 난 그런 말 한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그러면, 도망쳐야지. 방에 들어가 얌전히 있으면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죽기 싫어서 당연히 도망친 건데 왜 그랬냐고?






이래서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이해라는 걸 못하는 거다.


포식자가 피식자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서, 설주원 씨는… 그러니까 설 사장님은, 그분은 어떻게…….”






겁에 질린 영주가 설주원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이현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지금 그 새끼 이름이 왜 나와?”






이현이 성큼 다가서자 그가 다가선 만큼 영주가 뒤로 물러났다.






‘도망쳐야 해.’






지금 영주의 머릿속을 점령한 생각은 단 하나, 도망쳐야 한다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 걸까.


문은 하나밖에 없고 그 문은 지금 설이현이 가로막고 있다.






‘밀치면, 밀려날까?’






자신이 있는 힘을 다해 떠밀면 설이현을 넘어뜨리고 밖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갑은? 가방은?


지갑은 가방 안에 있고 가방은 침대 옆에 있다.


설이현을 넘어뜨리고 도망칠 수 있다고 해도 가방까지 챙기는 건 무리다.


돈 한 푼 없이 이 저녁에 어디로 도망가겠는가.


게다가 설이현에게는 차가 있다.


금방 잡히고 만다.


지금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 펜션 주위에 설이현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 쫘악 깔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새끼 이름이 왜 나오냐고 묻잖아.”


“거, 걱정되니까요.”


“걱정?”






표정이 점점 더 사나워진다.






“그 새끼 걱정은 되고. 그래, 내 걱정도 했을까?”






설이현 걱정을 자신이 왜 하겠는가.


아, 설이현이 자신을 죽이면 어쩌나 그 걱정은 했다.






“말해 봐. 내 걱정도 했어?”


“회, 회장님은 걱정하실 일이…….”


“그딴 영상이 찍혔고, 방에 가 있으라고 한 여자가 도망쳤는데 이래도 내가 걱정할 일이 없어?”


“저, 저는 여, 영상은 가지고 있지 않고, 말했다시피 저도 설 사장님에게 속은 거라서, 저도 일단은 피해자고…….”






그래. 자신도 피해자다.


섹스 동영상인 줄 알았으면 누가 그런 짓을 했겠는가.


물론 설이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자신은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생각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수습은 어떻게 할 건데? 그리고 도망쳐서 숨으면 소송은 또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입양 무효 소송이 진행 중인데 당사자가 잠적하면 소송은 어떡하라고 도망치고 지랄이야?”






그래, 그 소송이 있었다.


입양 무효 소송.






‘그래서 더 화가 난 걸까?’






그럴 수 있다.






“그러니까 소송은… 소송은…….”






소송은 물론 이길 생각은 없다.


입양 무효는 영주도 바라는 바다.






“설이현 그 새끼는 내가 갈아 버렸으니까 그 새끼 이름은 꺼내지도 마. 한 번만 더 그 새끼 이름을 꺼내면…….”






갈아 버렸다.






갈아… 갈아… 갈아……?!






믹서에 넣고 갈지는 않았을 테고, 역시 공사장 같은 곳에서?






‘어, 어, 어떡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밀려오는 공포에 영주의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서, 설 사장님을 정말 갈….”


“그 새끼 이름 꺼내지 말랬지.”


“악!”






이현의 손이 영주의 턱을 꽉 움켰다.


거센 힘에 놀란 영주가 비명과 함께 입을 벌리자 뜨겁고 축축한 입술이 덮쳐오며 혀가 밀고 들어왔다.






“흐응……!”






영주는 고작 숨 막히는 신음을 낸 것이 전부였다.


그녀의 턱을 틀어쥔 채로 이현이 그녀의 입 안을 점령했다.


점령당한 것은 입 안만이 아니었다.


이현의 손이 제 셔츠의 아래로 파고들자 영주의 눈이 커졌다.






“읍! 읍!”






이 남자가 뭘 하려는지 알아차린 순간 영주가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


저보다 훨씬 힘센 남자가 제게 떠밀릴 리가 없다.


체구도, 힘도 이렇게나 차이가 나니 말이다.






‘미. 미쳤나 봐……!’






그때는 약에 취해서 그렇다 치고, 지금 이 남자는 왜 이러는 걸까.






‘약을 한 것도 아니고…….’






그때는 자신도 이 남자도 설주원의 계략에 말려들어 약에 취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제정신이다.


설이현은 지금 제정신으로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이유가 뭐야, 이유가… 이유……!’








“읍! 흐읍!”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 강하게 휘감는 혀에 영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이 어질거린다.


아무래도 산소가 부족한 것이 틀림없다.






셔츠 아래에서 파고든 손이 등으로 올라가 브래지어의 호크를 풀었다.


어깨끈이 없는 브래지어가 속절없이 흘러내려 허리에 잠깐 걸렸다가 발아래로 떨어졌다.






등을 더듬던 손이 옆구리를 스치면서 옮겨와 젖가슴을 움켜쥐자 영주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지 못하고 주저앉으려는 영주의 허리를 꽉 움킨 이현이 그녀를 곧장 침대로 떠밀었다.


정확히는 그녀를 안은 채로 침대 위로 몸을 던진 것이다.






“응! 응, 읏!”






여전히 입술을 놓아주지 않으면서 이현이 그녀의 유두를 문질렀다.


그 손길에 등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사흘이 지났지만 몸이 아직 그때의 그 뜨거운 밤을 기억하고 있다.


그 빌어먹을 1시간 40분 동안의 섹스가 얼마나 집요했었는지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씨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지금 확 되살아난 것이 느껴졌다.






아니면 그때 설주원이 사용한 약이 독한 거라서 아직까지 자신과 설이현의 몸에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설이현이 이 난리를 치고 자신도 이렇게 반응하는 걸 수도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설이현이 이러는 이유도, 자신의 몸이 달아오르는 이유도 찾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응!”






틀어 막힌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터졌다.


꼿꼿하게 일어선 유두를 이현이 잡아 비틀었기 때문이다.






“하윽!”






이현이 입술을 놓아주자 그제야 영주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위에 올라탄 남자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상기 된 얼굴을 올려다보며 영주도 숨을 헐떡였다.






“사흘 동안 숨었으니까, 세 번으로 봐주는 거야.”






세 번? 무슨 세 번?






그 [세 번]에 대해 묻고 싶지만 무서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위에 올라탄 이현이 수트를 벗어 던지고 셔츠까지 성난 손으로 풀어 헤친 다음 침대 아래로 벗어 던졌다.


그가 벨트에 손을 대고 바지를 벗는 것을 보며 영주가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유리창에 전부 벗은 남자의 몸이 비쳤다.






“엉덩이 들어.”






호랑이 앞의 쥐가 된 기분으로 영주가 시키는 대로 엉덩이를 들었다.


그러자 다리 아래로 바지가 쑥 빠져나간다.






“나머지는 알아서 벗어.”






바지와 함께 팬티까지 벗겨진 바람에 지금 남아 있는 옷은 셔츠밖에 없다.


영주가 망설이자 이현이 입술을 구겼다.






“내가 찢어 줘?”


“아, 아니요……!”






놀란 영주가 얼른 셔츠를 벗었다.


셔츠를 훌렁 벗자 감추지도 못하는 젖가슴이 드러났다.






라면.




이런 상황에 라면이 생각나는 것도 우습다.






조금 전에 끓인 라면이 아직 테이블 위에 있다.


지금쯤이면 불어터졌겠지만, 이왕 쳐들어올 거라면 조금 늦게 올 것이지.


적어도 저녁밥은 먹고 난 후에 이런 일을 겪었다면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니 말이다.






“딴생각 하지 마.”






어떻게 알았을까.


귀신같이 자신이 딴생각을 하는 걸 알아차린 이현이 이제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딴생각하지 말고 나만 봐.”


“왜, 왜 이러는 건지만…….”


“왜 이래? 왜 이러는 거냐고? 날 먼저 따먹은 게 누구였더라?”


“그, 그건 그냥 약에 취해서…….”






그리고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정확히 덮친 것은 이현이었다.


자신이 그의 위에 올라타긴 했어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먼저 그걸 시작한 건 이현이었다.


자신은 그냥 시늉만 했고 그걸 진짜 한 건 이현인데 왜 자신이 먼저 한 것처럼 말하는 걸까.






“말도 안 듣고, 무책임하고, 또 제멋대로지, 한영주.”


“그게 무… 앗!”






누가 말도 안 듣고, 무책임하고 제멋대로라는 걸까.


반박하려던 영주가 비명을 질렀다.


이현이 그녀의 젖가슴을 꽉 베어 물었기 때문이다.






“아흑!”






영주의 두 팔을 꽉 누른 이현이 물었던 젖가슴을 뱉고는 단단하게 선 유두에 혀를 굴렸다.


쪽쪽 빨아 당기고 유륜을 혀로 핥다가 유두를 잘근거리며 씹자 그의 아래에서 영주가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녀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이현은 더 집요하게 젖가슴을 씹으며 삼켰다.






“하윽! 흑! 아……!”






유두에서 번지는 자극에 영주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때 이현의 손이 벌어진 음부에 닿았다.






“오줌이라도 쌌어?”






이현의 말에 영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 미쳤어요? 누, 누가…….”


“그러면 이건 뭐지? 설마 좋아서 싼 거야?”






이현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직전에 그녀의 음부를 문질렀던 손바닥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 그건…….”






그 젖은 것은 제 아래에서 묻어난 것이 틀림없다.


지금 제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었다는 것은 영주도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오줌이야, 아니면 애액이야?”






이 인간은 정말 나쁜 인간이다.


그걸 굳이 들어야 하는 걸까.






“말하지 않으면 내가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데?”






확인? 그걸 어떻게 확인한다는 걸까.






“아……!”






영주가 놀라 기겁했다.


그녀의 다리를 잡아 벌린 이현이 갑작스레 그 다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것이다.






“거, 거긴……!”






경악했다.


이현의 코끝이 중심을 문지르며 젖은 혀가 벌어진 살점을 핥아댔다.






“그, 그러지… 그러지 말……!”






깊숙한 구멍으로 혀가 찔러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손길에 영주의 허리에서 힘이 빠졌다.






“으흑! 아! 아!”






혀로 찌르던 구멍 안으로 길쭉한 검지가 안을 긁으며 밀고 들어왔다.


손가락이 들락거릴 때마다 물이 치덕치덕 흘러내렸다.


여전히 구멍을 빠는 혀와 함께 제 안을 들락거리는 손가락의 감각에 영주가 다리를 벌린 채로 허리를 흔들었다.


지금 제가 무슨 정신으로 허리를 흔드는 건지는 영주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리 사이에서 시작된 열기가 허리 위로 올라와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라 목덜미까지 뜨겁다.






“아흑! 아! 아아!”






제 다리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이현의 머리를 보며 영주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질렀다.


그가 제 구멍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강하게 빨아들일 때마다 영주가 자지러졌다.


달아오른 것은 귀와 뺨만 아니라 심장까지 터질 것처럼 뛰었다.


약에 취했던 그날 밤으로 돌아간 것처럼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영주가 눈을 감았다.






그때 그녀의 무릎이 접혔다.


이현이 그녀의 양쪽 무릎을 접고 위로 민 것이다.


덕분에 엉덩이까지 들린 그녀의 음부에 미끈거리는 뜨거운 것이 닿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그게 뭔지는 알았다.






“이건 전부 네가 저지른 일이야. 눈에 띄지 말라고 할 때 경고를 알아들었어야지.”






경고.


맞다.


이현의 말이 맞다.


그 경고를 새겨들었어야 했다.






한번 나갔으면 다시 그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욕심 때문에, 엄마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 때문에 눈에 띄지 말라는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집에 돌아간 것도 자신이고, 설주원과 손을 잡은 것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 지경까지 되고 말았다.


이게 설이현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설이현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는 것을 알지만 그럴지라도 설이현은 무섭다.






“눈에 띄지 말라면 앞에서 얼쩡거리고, 얌전히 방에 가 있으라고 하면 도망가고. 청개구리야? 한영주?”






이제는 벌레 취급이다.


아니다, 개구리는 벌레가 아닌가?


곤충. 이런 게 지금 중요하진 않다.






“청개구리 짓으로 사람 골탕 먹이는 게 취미야?”


“그, 그렇지 아… 앗!”






그때 영주의 젖은 구멍으로 이현의 페니스가 쑥 밀고 들어왔다.


그녀의 접힌 무릎을 누르며 이현이 허리를 쳐올렸다.






“아아아!”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처럼 영주가 소리를 질렀다.


느낌은 알고 있지만 사흘 만에 받아들이는 페니스는 낯설면서도 뜨거웠다.






“하윽! 아! 아! 아아!”






자지러지게 신음하는 그녀의 두 다리를 접은 채로 누르며 사납게 허리를 쳐대던 이현이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혀를 움직이며 두 손으로는 그녀의 다리를 누른 채로 허리를 밀어붙이는 남자의 아래에서 영주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함께 꿈틀거렸다.






몸 안을 들고나는 남자의 페니스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안을 긁고 빠져나갔다가 다시금 파고들어 올 때마다 뱃속이 저릿하게 울렸다.


탁, 탁, 소리를 울리며 그의 고환이 제 엉덩이를 때리는 것까지 느꼈다.


접힌 채로 허공에서 흔들리는 다리에 저리고 굽어진 발가락이 꽉 죄어들었다.


몸 안을 찌르는 페니스가 점점 커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아니면 실제일까.


이러다가 몸이 터지지 않을까 찢어지지 않을까, 무서움이 와락 들 즈음, 남자의 페니스가 밖으로 쑥 뽑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배꼽 위로 뜨거운 것이 확 끼얹어졌다.


설이현의 정액이었다.






“이제 한 번.”






그 말에 비로소 영주가 [세 번]의 의미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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