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남자 3

맛있는 남자 3

M 망가조아 0 1705

맛있는 남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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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산.”






우산을 가지러 다시 현관 안으로 되돌아온 이한이 은서의 손에서 우산을 건네받았다. 


그때였다. 우산을 그의 손에 건네주던 은서가 그의 다른 쪽 손을 잡은 것이다.






“아.”






은서에게 손을 잡힌 이한의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사귀는 거 맞죠?”






뜬금없는 은서의 말에 이한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연애하는 거죠?”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뽀뽀해줄래요?”


“…!”






은서의 말에 이한의 심장이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했다. 뭔 뽀?






“사귀는 기념으로. 싫어요?”


“.....”






손을 잡은 채로 올려다보는 은서의 얼굴을 이한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한의 한 손에는 빗물이 떨어지는 우산이 들려 있었고, 한 손에는 그녀의 손이 잡혀 있었다. 아니, 그녀가 그를 잡고 있었다.






“자, 잘 못하는데.”






실은 한 번도 안 해봤다, 뽀뽀 같은 건.






“뽀뽀는, 쉽잖아요.”






그녀도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불능이다. 하필이면 단어도 ‘뽀뽀’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뽀뽀는 무슨 뽀뽀. 키스라고 말할 걸 실수했다고 그녀가 후회하는 그때, 이한의 얼굴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다가왔다. 






얼굴이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그녀가 살며시 눈을 감는다. 뽀뽀할 때의 에티켓은 눈을 감는 거라는 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였다. 






살며시 눈을 감은 그녀의 입술에 부드러운 것이 닿는다. 부드럽고 포근한 감촉이 입술에 살며시 닿았다 싶더니 천천히 떨어진다. 


이한의 입술이 떨어진 다음에도 그녀가 눈을 뜨지 못했다. 






정말 ‘뽀뽀’만 한 이한이 눈을 감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봤다. 여기서 뭘 더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걸 하려면 보통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오늘은 돌발 상황이 너무 많이 벌어진 것이다. 






비, 우산, 초대, 브래지어, 콘돔, 그리고 뽀뽀. 여기서 하나만 더 일이 늘어나도 과부하로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이한이 생각했다.






“저어, 끝났는데.”






이한의 목소리에 은서가 눈을 떴다. 친절하게 뽀뽀가 끝났다고 알려도 주는 남자다.






“진짜 갈게요.”






솜털 같은 뽀뽀만 한 다음 우산을 가지고 현관을 나서는 이한을 향해 은서가 얼른 말을 건다.






“내일 오전엔 쉬죠?”






은서의 말에 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토요일이라서 건물 청소 알바가 없는 날이다.






“그럼 편의점 알바 마치고 새벽에 다시 와요.”


“.....”






“밀크 커피, 사오면 타 줄게요.”


“갈게요, 잘 자요.”






이한이 대답을 하지 않은 채로 현관을 나서서 재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간다. 


현관 손잡이를 잡은 채로 멀어지는 이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은서가 갑자기 소리쳤다.






“나 새벽에 배고프니까 삼각 김밥도 사와요!”






‘우와아아아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한이 시뻘게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로 발을 동동 굴렸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입술에 닿은 것이다. 정말 뽀뽀를 한 것이다. 여자의 입술에, 그녀의 입술에 닿아버린 것이다. 


게다가 새벽에 오라니,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새벽에 오라니!






“후아, 후아, 후아.”






이한이 심호흡을 해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심장을 가슴을 뚫고 나와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새벽에 왜 오라는 거지? 새벽에 뭘 하자고.’






주머니 안에는 아직 콘돔이 있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이한이 두 손으로 입을 막는다.






‘아닐 거야, 그런 게 아닐 거야. 설마 이틀 봤는데… 어제 사귀기 시작했는데. 이건 김칫국이야.’






그러면 왜 새벽에 오라는 걸까? 둘이서 새벽에 조깅이라도 가자는 걸까? 비가 오는데? 아니면 단순히 삼각 김밥이 먹고 싶어서 김밥 셔틀을 시키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녀는 먹는 것에 유달리 집착하지 않는가. 그래, 어쩌면 삼각 김밥을 가져다 달라기 미안해서 새벽에 오라는 건지도 모른다. 




새벽은 미끼고 진짜는 삼각 김밥?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한이 숨을 가다듬는다. 


뭔가 꿈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린 이한이 입술에 손가락을 눌러본다. 아직까지 그녀의 입술 감촉이 남아 있었다.






*






“나 미쳤나 봐. 어떡해~~~~”






여기 또 한 사람.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이 여자 채은서.






“내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서~~~~”






새벽 어쩌고 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뒷수습이 되지 않는 것이다. 순간 정신이 나갔던 것이 분명했다. 


이한의 입술에 닿는 순간 전기가 찌리릿 흘러버린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 반, 재미 반, 그리고 밥 먹을 핑계 반으로 사귀자고 한 것인데 입술이 닿는 순간 전기가 찌르르 흐른 것이다. 


입술이 닿는 순간 전기가 흐르며, 그 남자를 더 알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버렸다. 






그 따뜻한 감촉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충동. 


그 따뜻한 온기를 놓치기 싫다는 충동. 


이제 차가운 침대 안에서 혼자 잠들고 혼자 깨기 싫다는 충동. 


입술이 따뜻한 것처럼, 손이 따뜻한 것처럼, 그 품도 틀림없이 따뜻할 남자의 품에 안겨 잠이 들고 싶다는 충동. 


그리고 아침에 더 이상 혼자 눈 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눈뜨고 싶다는 충동. 


더 이상 혼자이기 싫다는 충동.






‘진짜 올까…?’






은서가 현관문을 쳐다봤다. 과연 그 남자가 새벽에 정말 벨을 울릴지 모를 일이다.


벨이 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집으로 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새벽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새벽까지 기다리는 마음은 분명 두근두근거릴 것이다.






*






“.....”






아파트 현관 앞에서 이한이 벌써 이십분 째 망설이고 있었다. 


새벽 5시 40분. 5시에 알바를 마치고 은서의 아파트로 곧장 오긴 했지만 막상 현관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벨을 누르면 자신 역시 한 마리 늑대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그냥 가려니 삼각 김밥을 사오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걸린다. 


만약 이대로 벨을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1. 삼각 김밥을 둘이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




2. 삼각 김밥과 음료수까지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




3. 삼각 김밥에 음료수에 커피까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 세 가지 경우는 결코 아닐 거라고 이한이 짐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






이한의 얼굴이 붉어진다.






‘또 뽀뽀를 할지도.’






어쩌면 이번에는 조금 더 진한 뽀뽀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온다. 영화에서처럼 근사하게 키스하는 방법 따위는 모른다.






‘만약 그런 걸 요구하면 어떻게 하지? 도망가야 하나?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면 실망하겠지? 이 나이 먹도록 키스 하나 제대로 못 한다고 실망하겠지?’






한참을 고민하던 이한이 현관 문 앞에 비닐 봉투를 살며시 내려놓는다. 


그 안에는 10개 들이 믹스 커피와 삼각 김밥 두 개, 그리고 딸기우유 하나, 초코우유 하나, 은서의 취향을 몰라서 이온 음료 하나를 넣어뒀다.






‘너무 많나?’






하지만 딱히 금방 상하는 것들 아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이틀은 갈 것들이다.






“잘 자요.”






이한이 아주 작게 현관을 향해 말한다. 그리고 일어나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띠리리리-.






주머니 안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 새벽에 누구지?’






이 시간에 전화를 할 사람이 없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낸 이한의 눈이 커졌다.






액정에 은서의 이름이 찍혀 있는 것이다.






“앗.”






은서가 건 전화에 놀란 이한이 핸드폰을 받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왔어요?”






열린 현관문으로 은서가 몸을 빼꼼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서, 혹시나 해서 전화해봤는데, 딱 맞아 떨어졌네요?”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은서가 배시시 웃는다. 수면 바지에 늘어진 티셔츠 차림의 은서의 모습에 이한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사이에 그녀가 현관 앞에 놓여 있던 비닐 봉투를 집어 올렸다.






“아, 딸기 우유다. 나 이거 좋아하는데.”






비닐 봉투 안을 들여다보던 은서의 얼굴이 헤벌쭉 웃는다.






“들어와요.”






당연히 이한이 따라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며 은서가 안으로 들어가자 머뭇거리던 이한이 그녀를 따라 현관 안으로 들어간다. 그가 들어가자 문이 닫혔다. 새벽 5시 하고도 49분.






*






집안은 깨끗했다. 쓰레기통 가득 담겨 있던 맥주캔들도 보이지 않았고 일회용 포장 용기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소파도, 테이블도 깨끗했고 방석까지도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청소했어요?”






설마 하며 돌아보는 이한을 향해 은서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밤새?”


“에이, 무슨 돼지우리도 아니고 무슨 청소를 밤새 해요. 삼십 분 걸렸어요, 삼십 분.”






하지만 사실은 밤새 청소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바닥을 쓸고 닦고 이한을 기다리며 밤새 청소를 한 그녀였다. 물론 욕실 청소도 했다. 욕실에 들어가 보니 가관도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카락은 예사고 결정적으로 생리대와 팬티까지 떠억 놓인 걸 보고 그녀는 기겁을 해버렸다. 


이한이 오기 전에 빨랫감들이며 욕실 정리까지 모두 마친 다음 뿌듯하게 이한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가 이한이 사 온 우유와 김밥을 냉장고에 넣는다. 




그때까지 이한은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소파에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 무릎 위에 올린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한의 옆에 은서가 살며시 앉은 것은 그때였다.






째깍째깍.






시계는 6시 5분을 넘어가고,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심장이 쿵쾅쿵쾅거렸지만 물론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






6시 10분. 애꿎은 손톱을 깨무는 이한의 옆에서 은서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뽀뽀 말고 키스는 어떻게 하는 거지? 영화에서 혀를 넣는 건 봤는데 그걸 넣어서 뭘 어쩌자는 거지?’






이한이 심각하게 고민할 때.






‘내가 먼저 사인 보내야 하는 거야? 이 새벽에 집에 오라고 하면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냐?’






은서가 심각하게 갈등을 하는 중이다.






‘양치질은 했는데… 키스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잘했습니다, 라고 인사해야 하나? 끝나면 뭐하지?’


‘샤워도 하고 속옷도 갈아입었는데 내가 너무 앞서가는 건가? 내가 먼저 사인 보내면 그런 거 밝히는 여자로 보이려나?’




‘이틀, 아니다 삼 일이지. 삼 일 만에 키스면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냐? 심각하지 않게 사귀기로 했는데 키스하면 심각한 사이 아닌가?’


‘콘돔 가지고 있겠지? 버리지 않았겠지? 나 가임기 계산 같은 거 못하는데.’




‘그냥 뽀뽀만 할까? 그게 덜 어색할 것 같은데.’


‘소파에서 하려나? 아니면 침대 있는 방으로 가서 하려나?’




‘아, 그냥 갈 걸.’


‘아, 단추 있는 옷 입을걸. 티셔츠는 위로 벗겨야 하잖아, 머리 헝클어지겠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남녀가 안절부절못하며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6시 15분. 두 사람의 시선이 어색하게 마주쳤다.






“저.”


“그게.”






입술만 달싹거리던 두 사람이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바라봤을 때 정확하게 시선이 얽혔다.






6시 16분 40초. 은서의 손이 이한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에 묻어나는 촉촉한 땀을 이한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손바닥 역시 땀으로 흥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있는 대로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치…!”






은서가 이한의 손을 잡은 채 벌떡 일어났다. 엉겁결에 따라 일어난 이한의 손을 잡아끌며 은서가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침대 구경할래요?!”


“네!”






잔뜩 기합이 들어간 그녀의 목소리에 얼떨결에 이한이 힘차게 대답했다. 


벽시계가 6시 17분 15초를 지날 때 두 사람이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드등 하나만 밝혀진 침대를 쳐다보며 이한이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한마디 했다.






“체크무늬네요.”






침대 시트를 가리키는 말이다.






“홈쇼핑에서 샀어요.”






그것이 두 사람이 침실에서 주고받은 말의 전부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먼저 그의 입술을 훔쳐버렸기 때문이다.


까치발을 들고, 그의 손을 잡은 채로,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에게 입술을 포갰다.






*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난 될 것 같은데요?”






침대에 앉은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중이다. 홈쇼핑에서 산 체크무늬 시트 위에 올라와 앉아 있는 두 사람이었다. 


갑작스런 은서의 키스에 이한이 엉겁결에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는데, 끌어안는 순간 침대 위로 쓰러진 것이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몸이 균형을 잃고 침대에 쓰러진 것뿐이었다. 


하지만 침대에 쓰러지는 순간 바로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침대 위에 무릎 꿇고 앉은 이한이다. 그리고 그런 이한의 앞에 은서가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우리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잖아요.”






“그래도 이런 건 좀 오래 만나고, 신뢰가 쌓이고.”


“선을 넘으면 더 가까워진데요. 친구가 그랬어요.”






“그 친구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안 좋은 것만 가르쳐주네요.”


“안 만난 지 이 년 지났어요.”






“그리고 이건 가볍게 만나는 사이에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가볍게 만나는 거였어요?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애인이잖아요.”


“그건.”






사귄다고는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현실감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마치 꿈의 연장선상인 듯, 아니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잘 짜인 사실극처럼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어서 이한이 은서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내가 정말 침대나 구경시켜 주려고 한 것 같아요?”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내가 된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나 후회 안 해요.”


“내가.”






이한의 머뭇거리는 목소리에 은서가 살짝 눈살을 찡그린다.






“나하고 자고 나면 후회할 것 같아요? 나 쉬운 여자처럼 보여서, 아무나 하고 막 자는 그런 여자처럼 보여서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가 화가 나 있다. 이한이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화를 내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고 그가 생각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여자 입장에서 더 두렵고 떨리는 일인데, 그런데 그런 것을 은서가 먼저 손 내밀었지만 자신이 물러나고 있는 것이다. 


은서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낼 만 한 것이다.






“저기, 나 지금까지 누구하고도 연애 해본 적 없고요, 남자하고 키스해본 적도 없어요. 나 싸구려처럼 몸 굴리는 여자 아녀요. 나 진짜 이한 씨가 좋고, 이한 씨라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용기 낸 건데, 이런 식으로 여자 자존심 밟으면 참 기분 좋겠어요.”




“난.” 화가 난 은서를 향해 이한이 작게 대답한다.




“난 무책임한 남자가 되긴 싫어요. 아무리 은서 씨가 좋다고 해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짓을 하고 싶진 않아요. 나중에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되긴 싫어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헤어질 때 걱정해요?”




“은서 씨가 그랬잖아요. 같이 밥 먹어주고, 이야기 나눠주고, 가끔 나쁜 놈들에게서 지켜줄 애인이 필요하다고. 결혼하자는 게 아니라 연애 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결혼까지 갈 것 아니라고. 연애하다가 헤어지고 그런다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우리 그런 사이라고. 그런 사이인데, 그 정도 사이인데 이런 짓 해버리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거예요.”




“그건.”




“고리타분하게 보인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나중에 은서 씨가 진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데 그때 그 남자가 처음이 아니면, 그 남자도 은서 씨도 힘들지 않겠어요?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때 후회할 은서 씨를 생각하면 내 마음도 무거워요. 헤어졌더라도 계속 마음이 무거울 거예요. 내가 한 짓 때문에 어쩌면 은서 씨가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진짜 고리타분하다.”


“조금 만나다 헤어질 사이라면, 서로 상처가 남지 않게 해요, 우리.”


“있잖아요.”






은서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이 이한의 무릎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나 혼자 자는 거 무서워요. 집에 혼자 있는 거 무서워요.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 밥 먹는 것도 무서워요. 혼자라는 게 모든 걸 다 무섭게 만들어요. 그래요, 나 밥 같이 먹고 싶어서 이한 씨하고 연애하자 그런 거예요. 누구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사귀자 그런 거예요.


그리고요, 혼자 잠들기 싫어서, 누구와 같이 잠들고 싶어서 이한 씨에게 오라고 한 거예요. 


결혼할 마음 없어요. 진지하게 오래, 앞으로 평생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 아직 해보지 않았어요. 


사랑한다, 어쩐다 하는 말은 낯부끄러워서 못해요.


그런데 신기해요. 지금 이한 씨 말을 들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일 년 후에도 이한 씨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십 년 후에도 이한 씨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 때 내 옆에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한 씨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지금처럼 그때도 변함없이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겠죠? 이한 씨라면 날 무섭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그때도 여전히 난 행복하겠죠?”




“.....”






“무책임한 남자가 되기 싫으면 끝까지 책임져요. 조금 만나다 헤어지면 상처 받을지 모르니까 끝까지 헤어지지 말고 상처 주지 말아요. 


이한 씨, 복싱은 포기했지만 난 포기하지 말아요. 내 인생, 한번 책임져보지 않을래요?”




“지금은 내가 선 발밑도 불안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은서 씨 인생까지 책임지겠어요.”


“그럼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요. 프러포즈는 그때 해요.”




“나 진짜 가진 것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내 눈앞에 있는 이한 씨는 뭔데요? 여기 가지고 있는 것 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이한 씨. 여기 있잖아요. 그거 하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망설이는 이한을 향해 은서가 살짝 웃으며 그의 손을 놓는다.






“나 샤워까지 했는데.”






이한의 얼굴이 붉어진다.






“불… 끌까요?”






이한이 침대 옆의 스탠드를 가리킨다. 그러자 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밝은 게 좋지 않겠어요?”


“나 서툴지도 몰라요.”






“나도 잘 몰라서 괜찮아요.”


“아, 떨리네요.”






그 말처럼 떨리는 손으로 이한이 은서의 셔츠를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녀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셔츠가 벗겨진다. 


브래지어에 감싸인 가슴이 드러나자 은서의 얼굴도, 이한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간다.






“나,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그 말과 함께 이한이 그녀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






‘아… 멋지다.’






순간 은서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남자, 생각보다, 아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다. 


머리맡의 스탠드를 켜두기 잘했다고 은서가 생각했다. 덕분에 이 남자의 벗은 몸이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이다. 






복싱을 했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지 멋진 몸이었다. 여름날 러닝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남자들의 몸과는 완전히 다른 몸이었다. 


불룩 나와서 처진 아랫배를 와이셔츠로도 감추지 못하는 회사 안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몸이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허름한 티셔츠에 가려져 그저 그런 것처럼 보이던 남자가 그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을 모두 벗자 비로소 본래의 ‘멋짐’을 드러낸 것이다. 


옷을 잘 갖춰 입어서 멋진 남자는 많지만, 옷을 벗고 멋진 남자가 몇이나 될까 하고 은서가 한번 생각해본다.






군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단단해 보이는 가슴. 남자의 쇄골이라는 것이 이렇게 섹시하다는 것 역시 그녀는 처음 알았다.


넓은 어깨에 우락부락하지 않은 근육이 잘 짜여진 어깨와 팔. 그리고 가슴 아래로 탄탄해 보이는 복근까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몸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고 은서가 약간의 부러움을 느꼈다. 






거기에 비하면 그녀의 아랫배는 약간 볼록하고 탄력이 없다. 


일명 ‘아랫배 핸들’이 생길락 말락 하는 자신의 몸이 이한의 몸을 보는 순간 부끄러워지는 은서였다. 






팬티 하나만 겨우 걸친 그녀가 침대 위에 누워 이한을 올려다보는 중이다. 이한 역시 팬티 하나만을 걸친 채로 그녀의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두 손을 그녀의 양 팔 바깥으로 짚은 채로 그가 그녀를 내려다본다. 


두 사람의 허벅지가 닿아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허벅지 위에 그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아랫배가 볼록거리며 움직인다. 






천천히 내려온 이한의 입술이 그녀의 턱에 닿는다. 따뜻한 입술이 턱에 닿자 은서의 몸이 바짝 긴장한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정말 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도로 물릴 수도 없다. 끝까지, 가는 것이다.






막상 이 상황이 되자 긴장이 되는 것은 그녀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긴장한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 전부터 전혀 웃지 않는 이한의 표정으로 은서가 그도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웃을 수 있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응.”






이한의 입술이 그녀의 턱을 조심스럽게 할짝거릴 때마다 은서의 입술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턱에 입술이 닿은 것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심장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응.”






그녀의 턱을 핥던 이한의 입술이 그녀의 목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점점 더 아래로 내려온 그 입술이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닿자 은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읏.”






그녀가 짧은 신음과 함께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이한도 거의 숨을 멈추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뭔가 좋은 향기가 난다고 이한이 생각했다. 마치 과자 냄새처럼 좋은 냄새였다. 


이한이 천천히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모아 쥐어본다.






‘말랑하다.’






그가 감탄하고 말았다. 여자의 가슴이라는 것이 이렇게 말랑거리는 것인 줄 몰랐던 것이다. 


말랑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것, 그것이 여자의 가슴. 그의 굳은 살 박힌 손가락 사이에서 그녀의 가슴이 부드럽게 뭉개진다.






“으응.”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부드럽게 뭉개지는 가슴 위로 그의 혀가 닿은 것은 그때였다. 


이한이 입술로 그녀의 분홍빛 유두를 머금은 순간 은서의 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읏…!”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유두를 삼킨 것이다.






‘부, 부끄러워.’






은서가 눈을 감고 숨을 참아본다. 너무 부끄러워서 눈을 뜨고 그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으응, 응.”






눈을 감은 채로 참았던 숨을 조금씩 겨우 내쉬는 그녀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 눈을 감고 있으니 감각이 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녀가 가슴을 더듬으며 따뜻한 입술로 애무하는 이한의 행동에 자신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에서 땀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 작은 접촉만으로도 땀이 흐를 정도로 몸이 뜨거워진 것이다. 






이한의 혀가 가슴을 스칠 때마다 그녀의 허리가 움찔거리며 다리가 비틀렸다. 


그런 그녀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빨아들이던 이한이 천천히 그 아래로 혀를 미끄러뜨렸다.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그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도 영화는 본 적 있다. 영화에서는 여자를 안기 전에 꼭 이렇게 해준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물론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으로 봐서는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천천히 내려간 이한의 혀가 그녀의 배꼽 주변에 머물렀다.








“응.”






배꼽 아래로 팬티로 감추어진 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은 이한이 볼록하게 살집이 있는 그녀의 아랫배에 입술을 묻었다. 


말랑거리는 부드러운 아랫배를 입술로 훔치다 옴폭 파인 배꼽을 살며시 핥아 본다.






“아앗.”






이한의 머리카락이 아랫배를 간질이자 은서가 삼키려던 신음 소리를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의 혀와 머리카락이 그녀를 동시에 간질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그의 혀가 그녀의 아랫배를 다정하게 어루만질 때마다 그녀의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른다. 


이미 단단하게 솟아오른 유두가 그녀가 느끼는 황홀함을 대신 표현해주고 있었다. 




처음에 그의 입술이 닿는 모든 부분들이 부끄러웠던 것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그의 입술이 닿는 곳이,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이 뜨거워서 그녀가 참을 수 없었다.






“하읏...!”






그녀의 짜릿한 신음에 이한이 그녀의 아랫배에서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 다시 가슴으로 올라와 그녀의 유두를 살며시 입에 문다.






“읏, 읏.”






그녀의 신음을 들으며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는 이한의 손이 그녀의 팬티에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팬티를 끌어내리는 그의 손길에 그녀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툭.






가벼운 소리를 내며 그녀의 팬티가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꽉 다물려진 그녀의 허벅지에 그의 손이 내려앉는다. 


손바닥의 느낌이 거칠다고 그녀가 문득 생각했다. 


거칠고 단단한 손바닥. 이렇게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거친 손. 


이 남자가 링 위에 서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녀가 상상해버렸다. 






링이라는 난폭한 무대 위에서 이 상냥한 남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이 남자의 이렇게 상냥하고 부드러운 모습 어디에 그런 난폭한 승부사의 모습이 숨어 있는 것일까. 


문득, 보고 싶다고 느꼈다. 링 위에 선 이 남자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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