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계약 #11장(2)

짐승 계약 #11장(2)

M 망가조아 0 1342

짐승 계약 #11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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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미쳤어?! 도와주세요! 이 남자 좀 신고……!”


“그만 좀 해!”






규태가 버럭 고함을 치자 희민의 목소리가 덮였다.






“저거 봐. 다 쳐다보잖아! 그만 좀 괴롭혀. 화낼 때마다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얼마나 빌어야 만족할 건데!”






멈칫거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규태가 주변 시선에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이자 하나둘 그냥 지나갔다.






“저 여자가 이상한가 봐.”


“남자 힘들겠다.”




“그냥 보지 말고 가. 창피하다는데 뭘 쳐다보고 있어.”






숙덕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희민의 당혹스러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왜 다들 이 남자 말을 믿는 거야?'






“봤지? 어서 타.”






규태가 잇새로 내뱉으며 거칠게 희민을 차에 밀어 넣으려 했다.






“당신 미쳤어?! 제발 누가 좀……!”






희민이 최대한 버티며 절박하게 주변을 보는데 갑자기 자길 떠미는 규태의 힘이 훅 빠지는 게 느껴졌다.






퍽!






“으억!”






둔탁한 타격음과 동시에 들린 규태의 목소리에 희민이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뭐지?’






슈트를 입은 커다란 남자에게 목 뒤를 잡혀 끌려 나간 규태가 바닥으로 처박히는 것이 보였다.






‘저, 저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희민의 눈이 커졌다. 눈앞엔 서정혁이 서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의미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격식 있는 짙은 그레이 색상의 헤링본 슈트를 입은 조각상 같은 남자는 순식간에 주변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서정혁이 왜?’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혁을 희민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때 규태가 뒤에서 휘청이며 몸을 일으켰다.






“당신, 당신 뭐야?”






정혁이 일어서는 규태를 힐긋 보고는 희민의 몸을 보호하듯 이끌었다.






“우선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요.”


“잠깐…….”




“당신 뭐냐니까?! 사람을 밀치고 어딜 가려고!”






규태가 소리를 지르며 다가와 정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






멈춰 선 정혁이 천천히 그를 돌아봤다. 두 사람의 신장 차이는 너무나 명백했다.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는 서늘한 눈동자에 규태가 흠칫거렸다.






‘이, 이 자식 뭐야?’






심장을 덜컥거리게 만드는 차가운 눈이었다. 


눈 색도 보통 사람과 달라서 이상한 느낌을 주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는 본능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은 규태가 잡고 있던 팔을 놨다.






“그, 그러니까 당신 누군데 그러냐고.”






뒷걸음질 치며 확 줄어든 목소리로 어물거리는 규태에게서 정혁이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가죠.”






희민의 어깨를 잡은 정혁이 그대로 그녀를 이끌었다. 


규태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싸우지도 못하고 진 개처럼 형편없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규태가 있던 곳에서 한참 멀어지자 희민이 걸음을 멈췄다.






“…….”






그녀가 우뚝 멈춰 서자 정혁도 따라 섰다.






“서정혁 씨.”






희민이 그를 올려다보며 불렀다.






마주 서서 보니 오랜만에 만난 그는 기억보다 더 위압감이 흐르는 남자였다.


살이 좀 빠졌는지 얼굴선이 더 날카로워져서일까. 


방금 전 규태가 말 한마디 못 하고 도망친 게 이해가 갈 정도로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무감하고 냉소적인 얼굴에선 여전히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보고 있으니 새삼 그가 얼마나 빼어난 미남인지가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희민이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우선 방금 전 상황에서 도와준 건 감사드릴게요. 사실 위험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






희민이 말하는 동안 정혁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묘한 눈동자.'






특유의 신비로움을 담은 눈동자가 똑바로 내리박히는 기분도 오랜만이었다. 


그 시선은 매혹적인 걸 넘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여자를 뒤흔들어 놓는다. 


오랜만에 보니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아름답고 서늘한 눈이 왜 위험한지.






희민은 아래로 늘어뜨린 손으로 지그시 주먹을 말아 쥐고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버텼다.






“그런데 당신이 여기 있는 건 조금 이해가 안 되는데. 우연인가요?”


“우연이라고 하면 믿을 겁니까?”






정혁의 관찰하는 듯한 집요한 시선이 희민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고 있었다.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두 눈과 코, 그리고 작고 섬세한 입술을 느릿하게 훑어 내리는 시선에 희민의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우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연이라고 생각할게요. 앞으론 이런 식으로 우연으로 마주치는 일도 없었으면 하고. 그럼.”






빠르게 말한 희민이 돌아섰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정혁의 손에 의해 다시 그에게 돌려세워졌다.






“왜 이래요?”






희민이 초조함이 담긴 눈을 치켜뜨자 정혁이 느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적어도 당신 앞에 다시 나타난 이유는 듣고 가는 게 어때요.”






마치 희민이 잔뜩 긴장해선 쫓기는 기분으로 그를 피하려 한다는 걸 간파한 듯한 목소리였다. 정혁의 그런 태도에 희민의 얼굴이 더 굳었다.






“난 듣고 싶지 않아요.”






다시 몸을 돌리려는 희민의 팔을 단단히 잡은 정혁이 시선을 맞춰 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듣고 싶지 않다니까요?”


“매일 당신을 생각하며 자위를 합니다.”




“!”






무슨 말을……!






희민의 입술이 절로 벌어졌다.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귀를 의심할 정도로 노골적인 말을 머리가 인식한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정혁이 그녀의 팔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고 시선을 옭아맸다.






“하루에 셀 수도 없이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해소가 안 돼.”


“미쳤어요? 그만해요!”






희민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는데 정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녀에게만 시선을 박고 있었다.






“오히려 더 죽을 것 같아. 한희민이 갖고 싶어서.”


“이봐요, 서정혁 씨!”




“상상 속의 한희민만으론 갈증이 나서 돌아 버릴 것 같다고.”






가까이서 강렬히 부딪쳐 오는 시선에 희민의 투명한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금의 수치도 없는 정혁의 얼굴이 오히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대변하는 것 같았다. 


어지럽게 쿵쿵대는 소리가 제 심장 소리라는 걸 깨달은 희민이 입매에 힘을 줬다.






탁!






정혁의 손을 뿌리친 그녀가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임신이 목적이 아니라면 섹스 파트너 정도는 충분히 찾을 수 있잖아요.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




“그리고 나보다 더 당신과 잘 맞는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갔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정혁의 두 손이 희민의 뺨을 감싸 오자 그녀가 멈칫거렸다. 그가 희민의 얼굴을 들어 시선을 휘어 감았다.






“당신 외엔 누구도 그 집에 데려온 적 없어.”






낮은 목소리에 희민이 멈칫거렸다.






“무슨 소리예요?”






분명 차 실장과 대화하는 걸 들었다. 자신보다 그와 더 맞는 여자를 찾았다고.






커다란 손으로 두 뺨을 고정한 그가 희민의 혼란스러운 눈을 들여다봤다.






“단 한 명의 여자를 생각하며 하루에 수십 번 자위하는 남자가 딴 여자로 그 욕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






희민이 긴장된 눈으로 시선을 포박한 그를 마주 보았다. 


어둡게 일렁이는 정혁의 눈은 그 저택에서 내내 봤던 뜨겁고 강렬한 눈동자였다. 


자신을 원하는 그 눈에 착각한 적이 있었다. 결국 돌아온 건 비참함이었지만.






시선이 붙잡혀 있던 희민이 고개를 돌렸다.






“우리 계약은 끝났어요.”






차갑게 말한 희민이 몸을 돌리려는데 정혁이 이번에도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 좀…….”






희민이 화를 내려는데 정혁이 그녀의 손을 끌어다 손등에 입을 맞췄다.






“!”






그대로 타오를 듯한 눈동자로 똑바로 응시하는 시선에 희민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망갈 수 있으면 가 봐.”






희민의 손을 천천히 놔준 정혁이 입술 끝을 휘어 올렸다.






“난 한희민이 결국은 나에게 붙잡힐 걸 알거든.”




“…….”






정혁의 눈동자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에게 잡혀 있던 손이 떨려 오는 것이 느껴지자 주먹을 말아 쥔 희민이 홱 돌아섰다.


그는 이번엔 잡지 않았다.






쿵, 쿵, 쿵.






희민이 거의 뛸 듯이 걸어 차를 주차해 둔 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 심장 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대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희민이 성마르게 모자를 벗어 옆자리에 내려놨다.






“……하.”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 넘긴 희민이 핸들 위에 두 손을 올리고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 뒤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초조한 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자위라니, 정말 미쳤어.’






그의 말을 떠올리자 얼굴에 뜨거운 열이 훅 뻗쳤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는 희민의 눈이 불안함으로 가득 물들었다.






‘정신 차려.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해.’






고개를 빠르게 저은 희민이 차 시동을 걸었다. 쫓기는 사람처럼 그곳을 벗어났지만 심장의 울림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






“요즘 많이 바쁜가 봐. 한동안 소개팅 열심히 하더니…….”






서희가 조심스레 묻는 말에 병실 TV에 고정되어 있던 희민의 얼굴이 서희에게로 향했다. 


멍하니 서희를 보던 희민이 그제야 말을 이해한 듯 웃어 보였다.






“요즘은 좀 시간 내기 힘드네. 바쁜 거 끝내 놓고 다시 만나 보려고.”


“그래. 바쁘면 어쩔 수 없지.”






서희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






미소를 머금고 다시 TV 화면에 시선을 돌린 희민은 금세 표정이 굳었다.






이규태 사건 이후로 매칭은 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학을 뗀 마음이기도 했다. 


처음 만난 남자가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집착을 보일 줄은 몰랐다. 


억지로 차에 넣으려던 이규태의 그 눈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죽 돋았다.






‘이규태 때문만은…… 아니지만.’






TV를 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희민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이규태보다는 사실 서정혁, 그 남자가 나타난 뒤로 심란해진 마음이 더 클 거였다. 


그 뒤로 다시 눈앞에 나타난 적은 없었지만 그날 정혁이 했던 말과 눈빛, 손등에 닿았던 입술의 감촉까지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하지만 희민은 수면 밖으로 나와 버린 서정혁의 생각을 고집스레 무시하고 있었다. 






억지로 눌러둔 것들을 다시 꺼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규태에 대한 후유증이 나아지면 다시 매칭도 시작해 볼 생각이었고.






지이이잉. 지이이잉.






진동이 울리자 희민은 옆에 놔둔 휴대폰을 들어 액정을 확인했다.






“!”






잠시 멈칫거린 희민이 휴대폰을 들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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