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노예 - 13

오빠의 노예 - 13

M 망가조아 0 869

오빠의 노예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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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불안




그날 밤늦게 집으로 온 태욱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방문을 열려고 했다.


영아가 정말 안 자고 정말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소곤거리는 듯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였다. 


그 누군가의 정체를 아니 그는 굳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 나만 받고 해준 게 없는 것 같아서.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러게. 우리 서로 잘 맞았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우린 친구는 됐잖아. 그렇지? 그래, 잘 자. 뭐? 미안해. 예전처럼 자주는 전화 못 해. 고마워. 이해해 줘서. 그러니까, 더 고마워.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진후 씨를 만났을까. 뭐? 알았어. 응, 나도 사랑해.”




사랑해?




그 달콤한 속삭임이 비수처럼 심장 깊숙이 박혔다. 


그에게가 아니라 다른 남자한테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특히 그와 잠자리를 하면 항상 사랑한다고 했던 그녀가 오늘은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더 그랬다. 




질투심이 독처럼 퍼져 숨통이 조여 왔다. 


이미 두 사람 관계가 어떤지 다 아는데, 그래서 이 정도까지 질투할 것까지는 없다고 판단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영아를 향한 강한 소유욕은 티끌만큼의 친밀감도 이다지도 싫은가 보다. 


그녀가 저 남자한테 말하는 사랑이 남녀 간 진한 사랑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렇게 치가 떨리는 걸 보니 그랬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이유로도 영아와 얽히는 게 싫었다. 


게다가 티끌만큼보다는 그 이상이니까. 


설령 이제 남녀 사이는 아니라고 해서 그래도 과거는 있던 사이였다. 




물론 그도 서울이 좁고 같은 법조인이 전 여친이라 가끔 말을 섞을 때는 있었다. 


하지만 사적으로 만나거나 통화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세대 차이인 걸까? 그가 구식인 걸까? 구식이라도 바꿀 수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따지고 넘어갈 문제였다. 




그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침대 위에서 통화하고 있던 영아가 벌떡 일어나 그를 돌아봤다. 


그를 발견한 그녀가 다음에 통화하자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빠!”




영아가 활기찬 목소리로 두 손을 활짝 벌렸지만 그는 그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표정에 영아의 밝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풀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눈길이 폰으로 향한 것을 눈치챈 그녀도 손에 쥐고 있던 폰을 어색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누구하고 통화했어?”




그의 목소리는 뱀처럼 매끈했다. 


그가 극도로 화날수록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는 눈치챈 그녀가 켕기는 듯 가녀린 어깨를 움츠렸다.




“진후 씨하고요.”




영아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끓어오르는 화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녀의 입에서 다른 남자 이름을 들으니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이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나지막하게 말을 뱉어냈다.




“내가 조심하라고 했고, 분명히 너도 조심한다고 했을 텐데.”




그녀가 두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그의 심란한 마음에 비해서 그녀의 손짓이 너무 가벼워 보였다. 


그게 더 그의 신경을 긁었다. 


화를 터뜨리지 않기 위해 자제하느라 그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게 뭔데?”




그가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그사이 풀어 놓은 넥타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셔츠 단추를 천천히 풀었다. 




손이 바빠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그녀를 힘껏 흔들어서 정신 차리라고 외치고 싶은데 강약 조절을 잘 못 해서 다치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음, 그러니까 우린 남녀로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라고요.”




그녀가 다시 두 손을 흔들자 그가 정신이 산란해서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그의 눈치를 바쁘게 봤다.




“방금 내가 듣기로는 사랑한다고 아주 달콤하게 속삭이던데?”




그가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달콤한 쪽보다는 음산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서로 마음이 너무 허해서 위안을 받기 위해서 통화 끝에 사랑한다고 했거든요. 뭐, 일테면 사랑해요. 고객님? 그런 빈말인 거죠. 들으면 기분 좋은데 별 의미는 없는. 이해되죠?”




그녀가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난 이해 못 하겠는데. 내가 싫다고 하는데 그래도 계속 통화하고 만나고 그럴 거야?”




“아직 마무리 못 지은 게 있어서 그래요. 유부녀 전 여친이 찾아와서 자기 힘으로 물리치기 힘들고 자존심이라도 세우려면 여친이 있는 척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내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해줘서 미안해서 전화한 거고요. 그리고 뭐 싫은 걸로 따지자면 난 뭐 안 그랬는 줄 알아요?”




“뭐?”




난데없이 그가 공격을 받으니 말문이 막혔다. 게다가 그녀의 표정이 그보다 더 분해 보여서 당혹스러웠다. 마치 꾹꾹 눌러 놓았던 깊은 분노 같다고 할까?




“난 단 하룻밤이었다고요. 근데 오빠는 내가 아는 관계만 해도 3년인데 그래. 그 정도면 부부 아닌가. 심지어 속궁합이 잘 맞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요!”




그녀가 그의 가슴을 탁 소리 나게 힘껏 치면서 이를 북북 갈았다.


막상 이렇게 들으니 그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그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나을 것 같았으니까.




“널 지키기 위해서였다면?”




“뭐라고요? 말도 안 돼.”




계속 태욱의 가슴을 치는 그녀의 두 손을 그가 꽉 잡고 포옹하듯 바짝 당겼다.




“네가 어릴 때도 내 마음이 산란했는데 성인이 된 넌 이브의 사과보다 더 유혹적이었거든. 하지만 넌 여전히 여동생이라는 사실에 내 욕망이 납득이 안 됐고. 그래도 저항할 수 있을 때까지 저항했는데…….”




감정이 너무 격해서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렇게 빠르게 말을 쏟아내는 건 그에게 드문 일이라 어떻게 정리해서 말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너무 어지러웠다.




“저항했는데 왜 계획적으로 사이판으로 날 데리고 갔는데요? 계획적인 거 맞죠?”




그녀가 답답한지 다그쳤다. 그는 어지러운 상념을 헤집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 네가 취해서 남자 등에 업혀서 왔다고 아버지한테 꾸중 듣는 소리 들었을 때 더 이상 내 자신을 속일 수 없었으니까. 나도 실속 없는 관계에 지쳤을 때였거든. 그러니까, 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널 품었으니 다른 여자는 필요 없었어. 우리가 남녀로 엮인 후부터로 따지면 난 순결을 지켰다고. 진정한 순결의 의미는 그때부터라고 생각하는데. 이쯤 되면 내가 화를 내는 것도 합리적인 이유가 돼. 부정하고 싶어?”




한풀 꺾인 영아의 표정을 보니 태욱의 빈틈없는 변론에 납득이 간 모양이었다.




“오빠 말이 맞아요. 그래도 선을 지키면서 서서히 멀어질게요. 갑자기 관계를 끊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어,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빈말이라도 안 할게요.”




이쯤 되면 그가 한발 물러나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싫어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건 좋을 게 없었다.


안 그래도 가시밭길인데 질투심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그가 하고 싶은 대로 그녀를 다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했다. 


그가 영아를 절실히 원하는 만큼 그녀가 원하는 것도 들어줘야 그게 바로 아끼는 마음이니까. 


태욱은 사랑이 뭔지 잘 모르고 표현도 서툴지만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녀가 웃으면 그도 절로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왔고,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면 그의 가슴이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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