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숲 5. 더러운 피

젖과 꿀이 흐르는 숲 5. 더러운 피

M 망가조아 0 1230

젖과 꿀이 흐르는 숲 5. 더러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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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는 건달과 창녀 사이에서 태어난 놈이었다.


가게 에이스였던 친모 쪽을 닮아 얼굴이 제법 괜찮았고 뼈대가 굵은 친부를 닮아 어릴 적부터 장골이 굳셌다.


그나마 좋은 부분을 물려받았으나 그 더러운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태오의 첫 기억은 찌든 술 냄새로 시작됐다. 부모 가릴 것 없이 매일 술을 처마셔서 둘 다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었다.




“사태오 이 자식, 어디 숨었어! 당장 이리 안 와?”




친부는 술에 취하면 짐승이 되는 개망나니였다. 운이 좋을 때는 술에 취해 바로 잠들었지만 운이 나쁘면 마누라고 애고 가리지 않고 골고루 팼다.




그런 남자도 일주일에 하루꼴로 멀쩡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제법 남편 노릇, 아비 노릇을 하며 위선을 떠는 터라 친모는 그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




집 안을 뒤집는 남자를 피해 밖으로 나온 태오는 달동네 계단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흰 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이었으나 그때도 생존 본능만은 강했던 태오는 옷을 단단히 껴입고 나와 있었다.




“범구 씨 술 많이 취했니?”




살이 얼어붙는 날씨에도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친모가 태오를 보고 물었다. 태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말없이 태오 옆에 앉았다.




우당탕 부서지는 배경음을 등지고 두 사람은 떨어지는 하얀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오의 입가에서는 뿌연 입김이 번지고 친모의 붉은 입술에서는 매캐한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어린애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상식도 지키지 않는 여자였다.




그녀는 어리고 예쁘장한 얼굴을 화장으로 덮고 다녔다. 손님을 상대하고 퇴근하는 새벽녘이 되면 두껍게 바른 마스카라와 립스틱이 다 번져 있었다.




“범구 씨도, 너도 지긋지긋해.”




안 그래도 번져 있던 화장이 그녀의 눈물에 녹아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까맣고 빨간 눈물이 깨끗한 흰 눈을 더럽히며 떨어졌다.




담배를 다 피운 여자는 태오를 돌아보지 않고 멀어졌다.




“…….”




태오는 2시간쯤 지나고서야 친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걸 완전히 이해했다.




친부는 친모보다 더했다. 그는 그녀가 떠난 걸 알고 태오에게 화풀이했다. 술에 취해 힘이 빠져 있긴 해도 체격이 크고 힘이 좋은 친부에게 태오는 몇 번이나 맞아 죽을 뻔했고, 심하게 때린다 싶으면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버릇이 들었다.




어느 날 술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든 남자는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쓰러진 태오를 보고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태오를 혼자 살고 있던 할아버지 집에 떠맡겼다. 


조부는 개망나니 아들 밑에서 짐승처럼 자라난 태오를 반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부처럼 학대를 일삼았던 것도 아니었다. 


태오는 적당히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태오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조부는 폐암에 걸려 사망했다. 친부는 굳이 태오를 챙겨 갔다.




중학생 태오는 고등학생만큼이나 체격이 좋았다. 친부만큼 다 자라지는 못했으나 예전의 어린애는 아니었다. 그는 적당히 친부의 폭력을 피하며 지냈다.




태오는 중학교 3학년 내내 나이를 속이고 술집에서 야간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았다. 체격이 큰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빠아아……. 나 많이 마셨는데 또 마셔? 나 취하게 해서 어쩌려구?”




태오가 친모를 다시 만난 건 일하던 술집에서였다. 




그녀는 여전했다. 싸구려 향수를 독하게 바르고 술에 취한 채 오늘 처음 봤을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태오는 두꺼운 화장으로 가려 놓은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으나 그녀는 긴가민가하며 태오의 얼굴을 흘긋거렸다.




질질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갔으면 좀 더 잘 살아 볼 것이지 고작 저렇게밖에 못 사는 여자가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태, 태오야! 태오 맞지……?”




“…….”




여자의 물음에 태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멀어졌다. 


그때 뭐라고 대답을 해 줬으면 그녀가 죽는 일은 없었을지 모르나 그때의 태오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보이니 눈에 밟히고 뒤늦게 죄책감이라도 든 건지 태오를 찾아왔다. 여자가 태오를 찾을 방법이란 개망나니 부친과 살던 집을 찾아가는 것뿐이었다.




친부는 그날도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놓고는 어떻게 여자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태오가 도착했을 때 친모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깨진 소주병 조각이 박힌 머리에서도 피가 흘렀으나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는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피가 흘렀나 의아할 정도로 컸다. 


한두 군데를 찔린 게 아니었는데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태오는 남자를 밀치고 쓰러진 여자를 살폈다. 살아날 가망 따위는 그때도 이미 없었는데 지혈 따위를 떠올리며 상처를 더듬댔었다.




그때였다.




푹!




뚝뚝 떨어진 선혈은 용암처럼 뜨거웠다. 칼에 찔린 부위가 끓어오르며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나만 속이고 둘이서 그동안 작당을 부려?”




태오는 무슨 정신으로 친부의 두 번째 공격을 피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친부가 죽일 듯 팰 때면 그러했듯 태오는 습관적으로 도망갔다. 


칼에 찔려 속도가 한없이 느렸다. 비틀대며 대문을 나서는 태오를 쫓아 나온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술에 찌든 살덩이였다. 


입에서는 악취가 쏟아졌고 벌건 눈동자는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뒤엉켰다. 태오는 상처를 입었지만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으아악! 죽어! 둘 다 죽여 버릴 거야!”




태오는 마구 휘두르는 칼에 몸 여기저기를 베이고 찔렸다. 


사람들이 늘 불길하다고 말하는 삼백안이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불을 피웠다. 마치 각성이 된 것 같았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힘이 번쩍 솟았다.




태오는 칼을 높이 드는 남자를 보며 바닥을 마구 더듬거렸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벽돌이 잡혔다.




평범한 인간은 사람의 얼굴을 공격하는 것을 주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태오는 평범한 인간이 아닐 것이다. 


그 순간 태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저 괴물의 얼굴을 으깨고 싶다는 살인 욕구뿐이었다.




퍽! 벽돌이 남자의 안면을 강타했다. 비틀거리는 남자를 향해 달려든 태오가 그를 계단 아래로 밀어 버렸다. 명백히 죽으라고 한 행동이었다.




쿵! 투둑!




가파른 달동네 계단 아래로 떨어진 남자는 머리가 터지고 목이 뿌드득 꺾인 채로 죽었다.




친부의 죽음을 확인한 태오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몸에 힘이 풀린 태오는 그대로 기절했다.


다시 눈을 뜨면 수갑을 차고 있진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너 범구 아들이라며? 범구 네가 죽였냐?”




“…….”




“요놈 이거 난 놈이네! 눈빛 봐라, 짜식! 마음에 든다! 하하!”




김진태는 딱 봐도 친부와 같은 부류의 개망나니였다. 다른 점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친부가 죽기 전까지 여기저기 야무지게 찔러 놓은 탓에 태오는 중환자였다.


뭐라고 대답도 못 하고 까무룩 기절한 뒤, 일은 그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있었다.




태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친부는 친모를 살해하고 실족사 한 걸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계단 모서리에 처박은 안면이 다 터져서 처리하기 쉬웠다며 진태는 낄낄거렸다.




“너, 내 밑으로 들어와라.”




진태는 사건 현장에서 빼돌렸을 벽돌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 피가 잔뜩 묻어 있던 태오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은 증거품이었다.




개망나니 하나 죽였더니 다른 개망나니가 왔다.


태오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하지만 개망나니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태오에게는 거부권이 없었다.




창녀의 자식은 창녀가 되고 건달의 자식은 건달이 되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거겠지. 시궁쥐에게는 더러운 진창이 어울렸다. 벗어나려 해 봤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그런데 태오는 왜 순응하지 못하고 버둥대고 싶었던 걸까.




* * *




김진태는 대부업을 했다. 다소 의외로웠던 부분은 그가 태오를 바로 실무에 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태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은 조폭도 머리를 쓰는 시대라는 게 그 이유였다.




태오는 진태가 자신을 개처럼 키우려고 한다는 걸 이해했다. 개를 키울 때는 채찍만 쓰는 게 아니었다. 당근도 적당히 줘야 빌빌대며 애교를 부렸다.




태오의 낮과 밤은 뚝 끊어져 나뉘었다. 낮에는 적당히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녔고 밤에는 뒷세계의 일을 배웠다.




진태가 태오를 개처럼 다루어도 태오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친부에게서의 탈출을 꿈꿨듯 진태와의 연이 끊길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먼저 사고를 친 건 진태였다. 


인근의 카르텔과의 알력 다툼에서 패배한 진태의 사업에는 망조가 들었다. 


진태는 한탕 거하게 쳐 한국을 나를 생각을 하고 있었고 태오는 내심 잘됐다고 생각했다.




태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몸을 납작 엎드리고 진태가 외국으로 꺼지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며칠만 더 참았으면 태오는 스스로 소원하던 바를 매끄럽게 이루어 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며칠을 못 참았다. 


김진태 그 개새끼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우림을 납치해 왔기 때문이다. 


데려오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는지 우림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었다.




“꼬마야. 네 할아버지한테 살려 달라고 해. 그럼 금방 끝나.”




태오가 우림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진태의 회사에 집 열쇠를 두고 와서 돌아왔다가 우림을 납치해 오는 진태를 목격한 것이다.


눈썰미가 좋은 태오는 우림을 곧바로 기억해 냈다.




고작 그 한 번의 마주침이 다였다. 


어린애를 납치해 온 진태의 미친 짓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위험을 감수하고 우림을 구해 줘야 할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겁에 질린 커다란 눈망울이 자꾸 아른거렸다.




좆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오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씨발, 진짜……. 애가 얼굴을 봤는데 살려 보내지는 않겠지…….”




태오는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했다.




최근의 김진태는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치면 무슨 돌발 행동을 할지 몰랐다. 일단 애를 김진태와 분리해 놔야 했다.




태오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그는 열쇠를 찾으러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김진태가 예상외의 상황을 마주하고 당황하면 패서 제압하면 됐다. 


태오는 친부를 닮아 사람을 패는 데 소질이 있었고 김진태는 육탄전에 강한 타입이 아니었다.




태오는 사무실 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우선 상황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똑바로 말 안 해?”




진태는 겁을 먹어 바짝 굳은 애한테 녹음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드는 거친 행동에 우림은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아이는 말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입술을 달달 떨었고 그 모습에 진태는 손을 번쩍 들었다.




더 보았다가는 애 얼굴이 걸레짝이 될 판이었다. 태오는 역시 좆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문을 벌컥 열었다.




“태오……?”




진태가 당황한 사이 태오는 성큼 다가가 진태의 명치를 무릎으로 찍었다.




“컥!”




태오는 신물을 토해 내는 진태의 등을 주먹으로 뚜드려 패고 쓰러진 진태를 발로 마구 찼다. 


그래도 조폭이라고 맷집은 짱짱했다. 


돼지 새끼를 패는 것에 집중하던 태오는 묘한 시선을 느끼고 우림을 흘긋 돌아봤다.




“눈 감아.”




눈이나 감으라는데 우림은 가뜩이나 큰 눈망울을 더 크게 뜨고 태오를 바라봤다. 


태오가 우림을 알아봤듯 우림도 태오를 알아봤다. 


태오는 그날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남색 명찰에는 ‘사태오’라는 이름이 반듯하게 적혀 있었다.




태오는 우림에게 더 말을 걸지 않았다. 이건 히어로물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진태와 마찬가지의 인간쓰레기였고, 우림을 돕는 것도 선의가 아니라 위선이었다.




살이 뒤룩뒤룩 찐 진태의 등을 무릎으로 찍은 태오가 주변을 돌아봤다. 


뭔가 묶을 만한 걸 찾아야 했다. 케이블 타이가 눈에 띄었다. 태오는 진태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사태오, 미친 새끼야! 씨발……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기절했나 싶던 진태는 터진 입으로 피를 줄줄 뱉어 내며 검은 물체로 태오의 배를 푹 찌르려 했다. 


태오는 막으려다가 움찔 굳었다. 씨발. 칼이 아니라 총이 나왔다.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태오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뭐든 쉬운 게 없었다. 괜히 좆됐다는 기분이 든 게 아니었다.




달칵. 장전된 총이 곧바로 발사되었다.




퍽! 오장육부가 다 뒤틀리는 느낌에 태오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나 여기서 놓으면 진짜 끝이었다. 어릴 때부터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태오는 죽음의 갈림길이 코앞에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진태의 머리채를 붙잡아 휘둘렀다. 책상 모서리에 코를 처박은 진태가 악을 썼다. 태오는 진태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을 때까지 코와 안면을 다 으깨 놓았다.




태오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진태를 묶어 놓고 바닥에 쓰러졌다.




“흐, 흐윽…….”




끔찍한 고통에 그만 정신을 놓고 싶은데 애가 정신 사납게 울어 댔다. 총상을 입고도 몸을 거칠게 움직여서 피가 줄줄 났다.




“믿어. 난 너한테 나쁜 짓 안 해.”




태오는 현기증을 느끼며 한숨처럼 속삭였다.




“울지 마……. 경찰, 하아…… 불렀으니까, 눈 감고 잠깐만 있어.”




그거 몇 마디 말해 줬다고 우림은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끅끅거리면서도 살금살금 태오 곁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옷자락을 붙잡는 순해 빠진 모습에 태오는 기가 막혔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상황은 해결됐는데 왜 엉엉 우는 어린애를 보니 자꾸 좆됐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그때의 태오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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