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노예 - 27

오빠의 노예 - 27

M 망가조아 0 1271

오빠의 노예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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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랬다. 은혜를 모르는 놈부터 시작해서 부친이 알게 되는 날이 오면 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무서운 경고까지 다 들었다. 


그렇게 여과 없이 다 알게 되니 할 말이 없었다. 마치 짙은 안개로 인해 한 치 앞이 안 보여서 걸어도 걸어도 막막한 암흑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미 이별은 해봤고, 효과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 고통을 부친이 겪게 된다면 차라리 그녀가 다시 아픈 게 나을 것 같았다.




“후생을 믿어요?”




“뭐?”




영아는 그에게 떨어져서 소파 위에 앉았다.




“난 아빠한테 빚을 졌어요. 오빠는 아마 어머니한테 빚을 졌다고 느낄 거예요.”




“그래서?”




그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그의 마음속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느꼈다. 그건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전부를 다 가질 수 없다고 다 부숴 버릴 수는 없잖아요.”




모친의 경고는 명백했다.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면 다 잃을 거라고. 막다른 골목이었고, 뚫고 나올 길은 없었다. 


영아는 차마 그를 쳐다보기 힘들어 큐티클 뜯는데 사활이 걸린 것처럼 집중했다. 


인정사정없이 뜯어서 피가 날 것같이 아픈 게 나아 보였다. 그러면 마음속 고통이 분산될 테니까.




“그만둬. 피 나잖아.”




태욱이 가해를 하는 그녀의 다른 손을 거칠게 치웠다. 피가 나는 손톱 위를 그가 휴지로 꾹 눌렀다.




“우리 생일 선물로 만날까요? 둘 다 내키지 않는 날이니 기쁜 날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싫어.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 사안이 사안인 만큼 처음부터 받아들여질 거라고 기대한 것도 아니잖아.”




그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지만 모친의 경고는 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모친은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이 많고 너그러운 성격이기는 했지만 일단 결정하면 번복이 없었다. 그만큼 분명하다 싶은 신념에서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해결책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괜찮아요.”




영아가 그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지만 태욱은 놓아주지 않았다.




“흔들리지 마.”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녀를 간절히 바라봤다.




“흔들리는 게 아니에요. 난 이미 마음을 정했어요. 오빠를 마음으로부터 밀어내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전처럼 다른 남자한테 위안을 받지는 않아요. 하지만 오빠한테까지 다른 여자 만나지 말라고 강요는 안 해요. 남자는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니까.”




“세상에. 넌 도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사랑 없이 가능할 때는 사랑이 뭔지 몰랐을 때고. 지금은 이미 다 알아 버렸는데 내가 다른 여자와? 상상만 해도 구역질 나.”




그가 영아의 어깨를 힘껏 흔들면서 노려봤다. 그녀는 힘없이 웃었다.




“고마워요. 말은 그래도 실은 이런 말을 기대했나 봐요. 우리 일단은 어머니 말씀 들어요. 어른들은 자식이 당신의 뜻에 거역할 때는 괘씸함을 느낀대요. 반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에도 순종하면 마음이 누그러질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우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요.”




학생과 강압적인 부모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중재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모 입장에서 듣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기다리자고?”




“네, 그게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해요.”




“만약 끝까지 허락받지 못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녀는 그냥 웃었다. 여기서 울음을 터뜨리면 끝없이 슬픔의 수렁에 빠져서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폰 벨 소리에 액정 화면을 확인한 그녀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야?”




“네. 잠깐만요.”




그녀는 떨리는 손길로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 너 지금 한남동이니?




모친의 목소리는 너무 부드러웠다. 그게 더 무서웠다.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음 말씀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 긴장해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 편 끊었어. 지금부터 두 시간 후 5시 반 비행기니까. 여유 있게 공항으로 가려면 지금 챙겨. 그리고 당분간 우리가 널 보러 부산으로 갈 테니까 네가 서울로 올라오지는 않는 게 좋은 것 같구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만약 안 회장의 어조가 완강했다면 섭섭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절히 비는 듯한 울리는 목소리는 한없이 미안할 뿐이었다.




“네, 바로 내려갈게요. 그리고 어머니 말씀 거역할 일 없을 거예요. 심려 끼쳐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안 회장은 긴 숨을 내뱉으며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끊어진 폰을 잠시 멍하니 들고 있다 참고 있던 호흡을 후, 하고 뱉어냈다. 


그때 톡으로 예약 번호가 들어왔다. 톡 내용을 본 태욱은 굳은 듯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도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쓰디쓴 두 시선이 얽힌 채 그렇게 시간이 정지된 듯 어느 누구도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오빠 저, 그만 내려가야 할 것 같아요.”




먼저 정신을 차린 영아가 짐을 챙기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무릎에 놓여 있던 폰이 우당탕하고 떨어졌다. 둘 다 동시에 폰을 집으려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먼저 폰을 집은 그가 그녀의 손안에 폰을 건네주자 그녀가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태욱이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 잠시 고개를 숙인 채 굳은 듯 가만히 있던 그는 천천히 턱을 들었다.




“작별 인사는 안 할게. 다시 만날 거니까. 조만간. 안 그래?”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눈동자는 폭풍이 치는 듯 거칠었다. 그녀는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울먹일 게 뻔했으니까. 


대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의 폰에 톡이 왔다. 지금 바로 짐 챙겨서 방배동으로 들어오라는 안 회장의 명령이었다.




“이건 정말…….”




“아무리 강압적이라도 거역하면 안 돼요. 어머니는 지금 충격받고 화가 나서 평소답지 않은 거니까.”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이해해? 근데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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