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노예 - 9

오빠의 노예 - 9

M 망가조아 0 622

오빠의 노예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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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 언니는 좋은 여자 친구였네요.”




칭찬 같지만 씁쓸한 어조였다. 그는 뭔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네가 말했던 ‘좋은’이 따뜻한 여자라는 의미라면 아니야. 내 겉만 보고 타이틀처럼 곁에 두고 싶어 했을 뿐, 진정으로 사랑한 건 아니니까. 만약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면 교제하지 않았겠지.”




“처음에는 그랬겠죠. 유진이 언니는 자존심이 대단한 분이니까. 그래서 더더욱 오빠 곁에 못 견뎠을 거예요. 진심을 주지 않는 오빠가 자신을 비참하게 했을 테니까.”




영아의 순진한 시선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 얼마나 전쟁같이 치열한지 말이다. 


하지만 굳이 세세하게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두 사람한테 놓인 현실만 해도 충분히 복잡하니까. 


그래도 중요한 한 가지는 말해야 했다.




“내가 만약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보육원 출신이라면 과연 거들떠나 봤을까?”




그가 회의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영아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오빠는 오빠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가지고 싶은 가치가 있어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영아의 입으로 들으니 감동이었다. 




그녀는 그랬다. 그가 설령 헐벗고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아니 그랬다면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녀만이 그가 누군지 실체를 알고 진심으로 좋아해 준 단 하나의 여자였다.




“고마워.”




“인사치레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난 네가 필요해.”




그랬다. 공기가 필요하듯 그의 생명 유지에 영아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는 그녀를 잃는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살 이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편이 영아였으니까. 


그녀만 곁에 있으면 그는 외롭지 않았다. 영아의 존재만으로 꽉 채워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나도 오빠가 필요해요.”




하지만 그녀는 찌푸린 얼굴이었다.




“나를 원하는 게 싫어? 왜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야?”




영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파스타를 둘둘 말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신중했다.




“어쩌면 그게 우리의 행복이자 불행이겠죠. 참 모순이에요. 그렇죠?”




그는 영아가 파스타를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을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그도 그렇게 맛깔스럽게 그녀를 먹고 싶었다. 


1년 만에 그녀를 안았는데도 옷도 다 벗지 않은 채 성기만 내놓고 허겁지겁 관계를 했다. 


그러고 바로 서울로 올라온 후 그런 식으로는 안기 싫어서 뜸을 들이는 중이었다. 




굶주린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겉만 채운 성교는 간에 기별도 안 갔다. 


그의 바지 앞섶은 불편할 정도로 볼록한 상태였다. 


이를 누른 채 그녀가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것은 과연 그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판결하는 시험대 같았다. 


그래도 그가 정성을 들인 요리니 그녀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전 같으면 그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가 1년 전 결별 선언을 한 이유가 성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오해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조심스러웠다. 


그의 욕심보다는 그녀의 감성을 배려해 주면 오해가 풀릴까?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뭐든 노력을 해야 했다. 


그녀를 잃으면 안 되니까. 처음 만나는 연인처럼 호감을 사려고 별짓을 다 하고 싶었다.




“불행은 우리가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었지. 이렇게 같이 지내는 시간은 행복하잖아. 안 그래?”




그는 그랬다. 처절한 불행을 겪고 나니 영아와 함께 숨만 쉬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영아도 그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랐다. 


예전 같으면 당연하다고 확신했겠지만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는 데 미세한 공백이 생겼다. 


그녀가 나이 들고 어른이 되고 자립심이 강해지는 데다 심지어 그를 쉽게 흔들 수 있는 여자로서의 강점이 불안감을 키웠다.




“설마 우리가 마냥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 우리가 즐길수록 더 죄인이 된 기분이에요. 우리가 언제까지 부모님 눈을 속일 수 있을까요?”




그건 그가 수없이 자신을 다그친 이유고, 1년 전 그녀의 결별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본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때문에 그의 삶을 포기하기 싫었다.




설령 그 대상이 부모님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세속적인 그 어떤 이유로도 희생하기 싫었다. 그가 당장에 죽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을 살필 여유가 어떻게 생기겠는가.




“길을 찾아봐야지.”




“무슨 길?”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




그녀가 기도 안 찬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언제부터 그렇게 초연해졌나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내 곁에 두겠다는 결심이 선 순간부터.”




그의 결연한 어조에 그녀가 깜짝 놀란 듯 눈을 깜박거렸다.




“그 결심이 언제 섰는데요?”




“널 다시 찾으려고 비행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결심했지.”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릴까 봐 두려우면서도 애써 허세라고 자신을 다독거릴 때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그녀를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 같았다.




“내가 오빠한테 마음이 떠났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던가요?”




영아가 포크로 그를 찌를 듯이 흔들며 코끝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 도발적인 모습이 너무 앙증맞아서 쓰다듬어 주고 싶어 손이 간질거렸다.


하지만 꾹 참았다. 일단 그녀를 만지고 나면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만약 그랬다면 널 찾을 가치가 없었겠지. 난 항상 생각했어. 우린 뭔가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아마 부모님 상견례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널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것 같아.”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고 눈을 깜박거렸다.




“음, 우린 영혼이 닮았을까요?”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외로운 영혼일 거야. 하지만 황량한 나에 비해 넌 빛이 났어. 열다섯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조숙했고.”




그는 아직도 선명하게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노안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죠. 하지만 요양원에 댄스 봉사 활동 때문에 화장을 한 것도 한몫했어요. 약속 시간이 촉박해서 지울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간 탓에 내 첫인상이 그랬던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이렇게 머리를 시원하게 자르니 내 나이보다 어려 보이지 않나요?”




그는 새삼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녀 말대로였다. 귀밑에 찰랑거리는 웨이브 진 단발은 그녀가 이제 겨우 소년티를 벗은 대학 신입생 같았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것을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사실은 그에게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를 더 크게 느끼게 하니까. 


몹시 신경 쓰였다. 그는 그녀와 연결된 기분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이 강한 끈이 어느 순간 떨어질까 봐 겁이 났다. 


그녀가 그의 손에 미치지 않는 곳으로 멀리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녀는 그에게 항상 그랬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듯 위험천만 속에서 외줄 타기 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가 뭘 할지 알아차린 영아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초콜릿 눈동자가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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