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포효 22
욕망의 포효 22
“머리에 피가 고여 있어요. 피를 제거해야 하는 수술이고요, 다리는 골절이 되어서 깁스를 해야 합니다.”
“수술만 하면 괜찮은 겁니까? 사고는 어떻게 난 겁니까?”
“졸음 운전하던 트럭하고 충돌한 사고입니다.”
“네에?”
“동의서 작성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효준이 동의서에 사인했고, 휘석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대기실에서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희수는 긴장을 풀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효준은 음료수를 사 와 희수에게 내밀었다.
도무지 무언가 넘어갈 것 같지 않은 희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거야. 목 좀 축여.”
“다른 일은 없겠지? 정상적으로 회복하겠지?”
“그럴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효준이 음료수 뚜껑을 열고 내밀자 희수는 간신히 목만 축였다. 뇌수술이라서 걱정이었다. 뇌를 다쳐서 잘못되는 건 아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효준은 희수 옆에 앉아서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간호할 거니까 당신은 걱정하지 마.”
효준의 말에 희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왜?”
“남자를 당신이 간호할 수 있겠어? 다리도 당분간 못 쓸 텐데, 당신보단 내가 낫지.”
“휘석이가 원하지 않을 거야.”
“그 친구가 원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걸 해야 하는 거야.”
“당신은 일 안 해?”
“당분간 쉬어야지. 상황 봐서 움직이면 돼.”
“왜 그렇게까지 하려고?”
“당신한테 소중한 친구잖아. 내가 없을 때 당신 곁에 있어 준 친구잖아. 솔직히 그 친구가 매우 고마워. 당신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줬잖아. 내가 해야 한 걸 그 친구가 해줬잖아. 그 친구한테도 사과해야지.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휘석이 가족들도 있어. 부모님이 보살필 거야.”
“힘든 일이 있을 땐 나도 도울 거야.”
희수는 수술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바랐다. 간호는 그다음 문제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두 사람은 침묵을 고수했다.
수술이 끝나기 전에 휘석의 부모님이 도착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모님을 안심시키느라 희수와 효준이 애를 먹었다.
수술 시작한 지 5시간 30분이 지나서 수술이 끝났다.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
효준이 물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일단 중환자실로 갔다가 의식이 돌아오면 일반 병실로 옮길 겁니다. 무엇보다 안정이 중요합니다. 다리 골절로 깁스도 했습니다.”
“의식은 언제쯤 돌아올까요?”
“기본적으로는 1시간이 지나면 돌아오지만,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네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병실은 1인실로 하고 싶은데요.”
“간호사에게 말해두겠습니다.”
의사의 대답에 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도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1인실이라니, 병실 비가 많이 나오면 감당이 안 되는데.”
휘석의 모친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어머님. 제가 부담할 겁니다.”
“아니, 왜요?”
“제가 휘석이한테 빚이 있거든요. 휘석이 간호도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아버님, 어머님은 아무 걱정도 하지 마세요.”
“희수야.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희수는 휘석의 어머니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효준이 분명 오버하는 것 같은데 하지 말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휘석을 감당하려면 남자의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휘석을 보는데 휘석은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희수야.”
“어머니. 괜찮아요. 휘석이 케어하려면 남자가 필요해요. 생판 모르는 간병인을 쓰느니 이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럴까?”
“희수가 이렇게 말하니 그대로 따릅시다.”
“알았어요.”
휘석이 부모님이 납득하는 것 같아 효준은 안심했다. 수술도 잘 됐다고 하니 한시름 놓는데 간호사가 다가왔다.
“1인실 말씀하셨죠?”
“네.”
“따라오시죠.”
“네. 가시죠.”
네 사람은 간호사를 따라 움직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동안 효준은 살짝 희수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희수는 효준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서 좋았다.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긋긴 했지만 지금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효준이었다.
일단은 효준이 하자는 대로 할 생각이었다.
경제적인 건 휘석이 넣는 보험이 있으니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휘석이 빨리 쾌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효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거다.
희수는 효준의 손을 맞잡으며 살짝 그의 어깨에 기댔다.
***
“그만 가라고요. 나 혼자 있을 수 있단 말입니다.”
휘석이 의식을 차리고 이 주일이 지났다.
이마에 붕대를 감고 다리에는 깁스하고 있어서 불편했지만, 효준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있겠다고 했지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안 가려고 하는 어머니를 억지로 보내면서 뭉클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억지로 참았다.
효준이 간호하겠다고 해서 싫다고 펄쩍 뛰었더니 희수가 하겠다고 나서서 희수도 돌려보냈다.
효준은 가라고 하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가지 않았다.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으면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신경 꺼요.”
“자네를 위해서 이러는 것 같은가? 내가 왜? 희수가 신경 쓰고 걱정하는 것이 싫어서 그래. 그러니까 내가 싫어도 참아.”
“내가 왜 참아야 합니까!”
“희수를 위해서 참아.”
두 남자는 서로를 노려봤다. 휘석이 이렇게 나올 걸 효준은 예상했다. 자신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왜 이러는 겁니까? 희수를 병원에 오게 안 합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돌아가요.”
효준은 휘석을 물끄러미 보다가 욕실로 들어가 물수건을 들고 나왔다. 휘석 옆에 서서 목을 닦아주자 휘석이 효준의 손을 밀어냈다.
“뭐 하는 겁니까?”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는지 아나?”
“무슨 말입니까?”
“내가 없는 자리에서 희수를 위해 그 자리에 있어 줬으니까. 희수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니까. 내가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인 거 잘 알아.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희수 앞에 나타났다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어. 그래도 자네가 희수를 지켜주어서 고마워. 혹시라도 희수가 잘못되었다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웃기는군요. 매몰차게 떠날 땐 언제고, 그런 말을 하다니요. 그리고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요. 희수는 내 친구고, 그럴 만하니까 옆에 있었던 겁니다. 당신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까 역겹군요. 희수하고 잘해볼 생각이면 희수한테나 잘하세요. 난 당신이 부담스러워요.”
“어쨌든 지금 자네에게는 내가 필요해.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효준은 이불을 젖히고 물수건으로 휘석의 발을 닦으려 했다.
휘석이 발을 걷어차며 그의 손길을 거부하자 효준은 힘으로 발목을 꽉 잡고 발가락 사이를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