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계약 #외전 3

짐승 계약 #외전 3

M 망가조아 0 1258

짐승 계약 #외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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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걱정은 머릿속에서 지워 줄게. 희민아.”




“네? 아…… 정혁 씨?”






몸을 일으킨 그가 자신의 카디건을 걸치고 있는 희민을 안아 올렸다.


단단한 팔로 그녀를 받쳐 든 그가 곧장 야외 정원을 지나 테라스로 걸어갔다. 


시선을 맞춘 정혁의 검게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며 희민이 다급히 말했다.






“걱정 안 할게요. 생각해 보니 걱정할 필요 없는 것 같…….”




“늦었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한 그가 그녀의 말캉한 입술을 담뿍 빨아들였다. 


테라스를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온 정혁은 2층에 있는 침실로 희민을 안고 들어갔다.






탁.






문이 닫히고 두 사람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잠에서 깨어난 희민의 시야에 정혁의 얼굴이 보였다. 


격렬한 행위의 흔적을 보여 주듯 섹시하게 헝클어져 있는 머리칼을 하곤 침대 위에서 턱을 괸 채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 언제 잠들었어요?”




“두 시간쯤 됐어.”






또 기절하듯 잠이 든 모양이었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희민이 그에게 시선을 향하고선 물었다.






“당신은 그동안 안 잤어요?”




“출근하면 또 못 보잖아. 자는 얼굴이라도 많이 봐 두려고.”






바쁜 회사 일정 때문에 희민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 아쉬워하는 그였다. 그아쉬움이 진하게 담긴 아름다운 눈을 희민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 다시 회사 나가면 바빠질 텐데, 괜찮아요?”






한 명만 바쁜 상황에서도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을 아쉬워하는데 둘 다 바빠지면 지금보다 더 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워질 거였다. 


희민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자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회사에서도 보면 돼.”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이마에 흘러내린 희민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당신은 세양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AQ그룹에 세양이 인수된 거라 정혁은 총책임자일 뿐 세양 쪽 관리자는 따로 있었다.


게다가 AQ엔 태원 역시 속해 있었다. 


그가 신경 써야 될 일이 한두개가 아닌 상황에서 세양 본사에 시간을 내서 오긴 힘들 거였다.






“그래도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가면 되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희민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그와 시선을 맞췄다. 최근 정혁의 일정은 몸이 여러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그 역시 그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 거였다. 


그저 그녀가 결정을 내리는 데 조금이나마 자신을 덜 신경 쓰길바라는 의중으로 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정혁이 깊은 눈으로 그녀를 보며 보드라운 뺨을 어루만졌다.






“마음 정한 거야?”






그녀가 숨을 느리게 내쉬고는 말했다.






“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요.”






하루 종일 고민했지만 아까 미리와의 대화로 확실히 결정하게 됐다. 


막상 다시 회사로 돌아가자고 결정하고 보니 자신의 속마음은 진작 그러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두려움보다는 다시 시작해 보려는 마음이 강했다. 


필사적으로 계단 위를 밟아 나가던 그때와 같은 열정은 아닐지라도 지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어쩌면 서희의 말대로 즐기면서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잘 생각했어.”






정혁이 미소 지으며 희민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달콤하게 입술을 머금었다가 놔 준 정혁이 가까이에서 시선을 맞췄다. 


어떤 결정을 하든 응원할 거라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진심이 지금 그의 얼굴에 묻어났다.






“내 편이 있으니까 좋네요.”






희민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사르르 차올랐다. 그 미소에 매료된 듯 바라보던 정혁의 얼굴에도 진한 웃음이 어렸다.






***






견고한 라인의 블랙 슈트를 입은 희민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긴 머리칼을 하나로 높이 올려 묶고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을 착용한 그녀에게선 이지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그녀를 보고 곧장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회의 진행하죠. 어제 최종 시안 나온 신형 모델 설명부터 시작해 주세요.”






자리에 앉으며 희민이 말하자 그녀를 따라 들어온 이지희 비서실장이 시안 이미지가 담긴 태블릿 PC를 빠르게 희민 앞에 내려놨다. 


시안을 확인한 희민이 안경 너머로 응시하자 담당자가 일어서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신형 모델은 기존의 세련된 디자인과 안정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제품으로서 전체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신기술이 탑재되었습니다. 자세히 설명드리면…….”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열심히 설명하는 담당자를 희민이 진지하게 응시했다.








잠시 후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에서 나온 희민이 이사실로 돌아왔다. 집무실에 들어온 희민이 손목시계를 보며 뒤따라온 이 실장에게 물었다.






“AQ 쪽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죠?”




“네. 회의 시간 전까진 도착할 거라고 연락 왔다고 합니다.”






차 실장일까. 잠시 생각하던 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자료들 잊지 말고 챙겨 두고.”




“네. 이사님.”






이 실장이 고개 숙이고 나가자 냉정을 유지했던 희민이 표정을 풀었다.






“……하아.”






그녀가 느리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스레 얼굴에 열기가 몰리는 것 같아 긴 머리채를 풀어 다시 그러모아 단정히 묶었다.






달칵.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은 희민이 창밖의 빌딩숲을 바라봤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이유는 회사에서 정혁을 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일 거였다. 


집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긴장이 느껴져서 자꾸만 시계를 확인하게됐다. 회의 시간까진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세양에 재입사한 뒤로 생각보다 더 바쁘고 오랜만에 일을 다시 시작해서 그런지 바짝 긴장한 상태가 이어졌다. 


하루 종일 일로 예민해져 있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쓰러지듯 잠들기 일쑤였다.


그녀가 피곤하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정혁도 잠든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 


그렇게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알람 소리에 일어나 다시 부랴부랴 준비하고 출근하는 일상이었다.






“아침은 같이 먹고 싶었는데…….”






탁상시계를 확인하던 희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녁은 퇴근이 늦어져서 힘들다 하더라도 아침이라도 같이 먹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힘든 나날이라 정혁을 제대로 본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종종 새벽에 언뜻 깼을 때 자신을 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느른히 웃어 주는 그 미소가 좋아 더 보고 싶었지만 금방 까무룩 잠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래서 더 떨리는 걸까?


회사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긴 하지만 요즘 얼굴을 제대로 못 봐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생각에 잠겨 있던 희민이 고개를 들었다. 자료를 손안 가득 든이 실장이 문을 열고 있었다.






“이사님. 회의실로 갈 시간입니다.”




“네.”






표정을 정돈한 희민이 태블릿 PC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로 가기 위해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 흐트러졌다. 


회의를 앞두고 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회의실에서 마주칠 정혁을 생각하니 도저히 침착하기 어려웠다. 


속으로 조용히 숨을 들이켜는데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딩―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본 희민의 눈이 커졌다.






‘정혁 씨?’






슈트 차림의 정혁이 인영과 함께 서 있었다. 


그런데 놀란 희민과 달리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잠시 응시했을 뿐 곧 시선을 거두어 갔다. 


그를 보좌하고 있는 인영도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일말의 알은척도 하지 않았다.






냉정한 분위기를 감지한 희민은 이 실장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전에 가볍게 고개만 숙여 짧은 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옮겨 정혁의 옆에 섰다. 


곧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엘리베이터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심장이 마구 뛰고 있는 자신과 달리 힐긋 쳐다본 정혁은 무감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보고 싶으면 회사로 찾아온다던 그가 알은척도 하지 않는 것에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선 이게 맞는 거겠지…….’






머리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오기 전부터 자신은 설레고 있었는데 차가운 얼굴을 한 정혁이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희민도 그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이 중역 회의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정혁이 먼저 내리자 복도에서 그를 본 임원들이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임원들을 보자 이 실장이 놀란 눈으로 희민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분이 AQ 회장님이신가 봐요. 생각보다 너무 젊으시네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고 무슨 모델인가 했는데……. 이사님은 알고 계셔서 아까 인사하신 거죠?”






평소 사담을 즐겨 하지 않는 이 실장조차 조잘거리게 만드는 남자라니.






잠시 이 실장의 시선을 따라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정혁을 보던 희민이 몸을 돌렸다.










“들어가죠.”




“아, 네.”






희민이 표정 변화 없이 회의실로 걸어가자 이 실장이 얼른 그녀를 따랐다.






잠시 후 중역 회의실의 기다란 테이블 상석에 정혁이 앉자 일순 긴장이 흘렀다. 


소소한 잡담이 오가던 임원들이 표정을 굳히고 정혁을 힐긋거리는 모습을 보니 희민은 그가 평소 이런 자리에서 풍기는 위압감을 새삼 실감했다.






희민은 모두의 시선이 향해 있는 정혁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정혁 특유의 분위기에는 희민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관리자급의 나이 많은 임원들을 상대할 때의 카리스마는 그녀조차 낯설 정도였다.






짧은 인사말을 건넨 정혁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난달 회의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내용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지 보고해주시죠. 먼저 자동차 부분 해외 수출 사업부터 해 주시겠습니까.”






정혁의 시선이 정확히 향한 상무가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섰다.






“네. 저희가 지난달에 회장님께 말씀드렸던 안건 중에서 총…….”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상무가 보고를 시작했다. 


그의 모습을 희민이 조용히 보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정혁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두근.






짧지만 강렬하게 시선이 얽혀 들자 희민의 심장이 빠르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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